저는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학생이고 프랑스 남자친구와 짧지않은 연애를 이어나가는 중인데요. 다름이 아니라 ‘취향과 문화의 인정’이라는 문제에서 서로 (혹은 저 혼자) 작은 갈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남친이 제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절 좋아하게 된 게 아니고 원래부터 한국이란 나라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도 잘 알고 이해하는데요, 가끔은 그가 그래도 한국에 아주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저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 그의 취향, 그의 배경 등 그의 모든 것들을 알고 이해하고 함께 좋아하려 노력하는데, 그는 그렇지 않다는게 저로선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때가 있어요. 소소한 예를 들자면, 저희 둘 다 음악을 좋아하고 그래서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고 함께 들을 때가 종종 있어요. 그가 들려주는 노래가 사실 전혀 제 취향이 아니더라도 저는 항상 괜찮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관심을 가지려 하는 반면, 그는 항상 제가 들려주는 한국 가수들의 노래에 ‘시큰둥’으로 일관합니다. 물론 그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머리로는 백번 천번 이해하지만 늘 그런 무관심 혹은 나아가 비꼼으로 반응하는 그의 태도가 저로선 기분이 상해요. 제 취향을 존중받고 싶고 한국 문화의 어떤 면들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유치한 걸까요. 제가 뭐 애국심이 투철하다거나 한국에 특별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건 결코 아니지만, 저라는 사람을 한국과 떼어서 생각할 수는 없잖아요. 한국인이라는 국적 또한 나의 정체성에 속하는 것이고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하나의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잘 사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미래를 약속한 사이는 아니에요. 보통 외국인 애인을 둔 경우 서로의 언어를 재미삼아 배우기도 하고 나아가 수업을 들으며 열성적으로 배우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제 남친은 장난으로라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보입니다. 만약에 그와 결혼을 하게 되고 그가 한국인 처가댁을 갖게 되면 그 땐 좀 배우려 들까요. 아니면 제가 그에게 터무니없는 기대를 하고 있는 걸까요. 그저 그는 한국인으로서의 저의 정체성에 그닥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은 걸까요?

가끔 위와 비슷한 상황들에 부딪히면 기분도, 자존심도 상해서 얼굴이 굳어져요. 그에게 좋게 말해서 대화를 해봐야 하는 문제인지, 아님 제가 그냥 쓸모없는 기대를 내려놓아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녀님은 남편분과 연애하시면서 저와 같은 갈등이 없으셨는지 궁금해요.

——

님의 남자친구는 결코 이상하거나 비정상이 아니예요. 제 남편에게 님의 사연을 얘기해줬더니, “딱 프랑스 사람 같네 뭐.” 라는 답을 하더군요. 미국인인 제 남편의 회사 팀에 프랑스 남자가 하나 있는데, 그를 보면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에 비해 훨씬 모든 면에 냉소적이고 칭찬을 별로 안한대요. 프랑스가 최고라는 자부심도 강하구요. 때문에 타문화에 대한 관심이 적을 수 있고, 타문화를 접해도 시큰둥해 보일 수 있겠죠.

제 남편은 미국인이지만 어릴 때부터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애니메 팬인데다가 태권도도 배웠고, 전반적으로 동양 문화에 관심이 원래 많은 사람이예요. 자기 스스로 ‘평범한 미국인’이 아니라고 해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타문화에 크게 관심이 없거든요. 그래서 전 님과 같은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죠. 하지만 님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돼요. 제 남편이 한국 문화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 우리의 결혼 생활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 문제는 어찌보면 별 문제가 아닐수도 있지만 어찌보면 심각한 문제일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 차이를 구분하는 건 결국 님이예요. 남친이 한국 문화에 관심이 전혀 없고 앞으로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얼마큼 님에게 중요한가요? 님이 원하는 결혼상대가 좋아하는 것들과 관심사를 같이 공유할 수 있고 적어도 그에 관심을 가져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면, 지금의 남자친구는 그 희망사항에 들어맞지 않는거죠. 그 희망사항이 그와의 관계를 끝낼만큼 중요한가요? 여기엔 정답이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나의 관심사를 공유할 수 없는 상대와는 결혼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죠.

남자친구가 님이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지, 아니면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꼭 한 번은 물어보세요. 그리고 그가 님이 좋아하는 한국 문화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섭섭하다고 하세요. 그는 상대방의 문화에 꼭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고 그것이 연애와 결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님이 말을 하지 않으면 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리라 짐작하게 될 수 밖에 없구요. 물론 그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강요할 순 없어요. 그가 정말로 한국 음악이나 다른 것들이 자기 취향이 아니라서 전혀 관심이 안 간다고 한다면 그 땐 그와 모든 것을 공유하려는 희망은 접으셔야겠죠.

그리고 님은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 님의 취향이 아니더라도 괜찮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고 하셨죠. 그러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님이 듣기에 전혀 좋지 않은 음악이라면 솔직히 얘기하세요. ‘이건 내 취향이 아니네.’, ‘난 별로야.’ 라구요. 서로 취향이 다르다고 상대방에 대한 애정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예요. 취향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변한다면 그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죠. 서로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싫어도 좋은 척하는 것은 결코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남자친구의 솔직함은 님이 이런 고민을 미리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남자친구가 혹시 한국이나 다른 아시안 나라에 가 본 적이 있나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국 문화와 언어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는 쉽지 않을거예요. 두 분의 관계가 더 진지하게 발전돼서 같이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때엔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싶네요. 제 남편도 제 가족을 만나러 한국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을 때 짧은 인사말 정도를 배워갔거든요. 그리곤 돌아와서 한국어를 더 배워야겠다고 다짐하더군요. 아무래도 상대방 문화에 대해 배우고자 할 의지가 생기려면 먼저 그가 두 분의 관계를 진지하게 여겨야 할거예요. 아직 그와 미래를 약속한 사이가 아니라고 하셨죠. 그가 님과의 관계를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문화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남자들이 다 그렇지만 특히나 서양남자들은 속에 담긴 생각을 얘기로 풀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해요. 돌려 말하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얘기해 버릇을 하는 것이 관계에 크게 도움이 될 거예요. 상대방이 그렇게 나올 때에도 물론 이성적으로 하는 말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