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친한 친구의 남자친구의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난 물론 그를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지만 30대의 창창한 나이에 죽었다는 말만으로도 그냥 한숨이 나왔다. 내 친구도 그 동생을 만나본 적이 전혀 없었기에 남자친구와 그의 부모님이 얼마나 상심하실까라는 생각 외엔 그냥 모르는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처럼 담담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물었다.

“나 장례식에 가야 될까? 미국애들한테 물어보니까 다 가야된다고 하던데, 솔직히 난 가는게 좀 꺼려져.” (내 친구는 한국인, 그녀의 남자친구는 미국인으로 사귄지는 6개월이 좀 넘었다.)
“글쎄.. 장례식이 주중이라고 그랬지? 그럼 너 회사 빼먹고 가야되겠네. 거기 세 시간 정도 걸린다면서.”
“그러니까…그래서 더 가기 싫고, 내 남자친구도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인데 (동생이랑 거의 연락도 안하고 지낸지 몇 년이래..), 내가 굳이 가겠다고 할 필요가 있을까?”
“나라면 그냥 문상만 가겠어. 장례식은 보통 가족 친지들이랑 친한 친구들 위주거든. 네 남친한테 사정 얘기하고 문상을 가겠다고 해.”
“그렇게라도 해야겠지..?” (별로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와 그 대화를 나눈 뒤 궁금해졌다.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의 집안 경조사가 있을 때 어디까지 참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지. 한국과 미국 문화가 이 부분에 있어 어떻게 다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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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문상 장면. 이렇게 시신을 관에 넣어 조문객들이 볼 수 있게 한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선 사귀는 사이에 상대방의 부모님을 만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랬다. 한국에서 두 명의 남자친구와 각각 2-3년을 사귀었었는데, 그들의 부모님을 뵌 적은 한번도 없었다. 첫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핑계를 대서 그 자리에 가지 않았던 기억도 있다. 그만큼 상대방의 가족을 만난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주위를 봐도 그랬다. 가족의 경조사에 누군가를 데려간다는 건 그 사람과 결혼할 예정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애인이 있어도 상대방 가족의 경조사엔 굳이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찍 부모님을 만나면 괜히 부모님으로부터 궁시렁 궁시렁 이런 저런 말을 듣게 되고 결혼하기도 전에 배놔라 감놔라 하는 몇몇 부모들 때문에도 상대방 부모와의 만남을 최대한 늦추고 싶은 심정이 연애하는 한국 남녀들의 일반적인 마음이 아닐까 싶다.

미국에선 사귀는 사이에 상대방의 부모님을 만나는 것에 한국에서만큼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부모들도 자식이 사귀는 사람에게 인사를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과 결혼할 사이라고 단정짓거나 하지 않는다. 때문에 가족의 경조사에 사귀는 사람을 쉽게 초대하고 초대받은 사람도 큰 부담없이 참석하는 것이 미국식이다. 한국에서 2-3년 사귀던 남자친구들의 가족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내가 미국에선 남편 이전에 1년 정도 사귀었던 남자의 부모님을 몇 번 뵈었고,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디너에도 초대받아 그의 온 일가친척을 다 만났다. 그런데 그 후에 바로 그로부터 이별통보를 받았다… S도 사귄지 석 달 째쯤 자기 어머니 댁에 같이 가자고 해서 그 때 어머니를 처음 뵈었다. S 말로는 자기는 사귀었던 여자친구들 거의 다 부모님께 인사시켰다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선 애인의 가족이 결혼을 하거나 상을 당했을 때 참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한국사람인 내 친구가 문상가길 꺼렸던 것은 지극히 한국 식 정서에서 나온 반응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난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식 미국식을 떠나서 내 나름대로의 경조사 참석 룰이 생겼다. 그건 축하해 줄 자리는 빠질 수 있어도 위로해 줄 자리는 꼭 가자는 것. 경사는 그 일 자체만으로 주인공들이 기분 좋은 날이니 손님이 없어도 덜 섭섭하지만, 조사는 상심해 있는 주인공들을 위로해 줄 손님이 필요한 자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이기적인 이유이긴한데, 난 결혼식에 갈 때보다 문상이나 장례식에 참석할 때 더 의미있는 자리에 있다는 느낌이 항상 들어서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문상갈 땐 부조금을 안내도 되기 때문에 그런걸까? 그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