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이나 갑부들만의 얘기였던 혼전계약서가 요즘은 고소득층 전문인들 사이에서도 결혼의 필수항목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기사를 얼마전 한국 신문에서 읽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혼전계약서는 결혼 전에 두 당사자가 합의하고 서명하고 변호사가 공증하는 법적 계약서로 만약 이혼을 하게 될 경우 재산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그 주 내용이다. 그에 덧붙여 아이가 생긴다면 양육권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결혼을 하기도 전에 이혼할 경우를 대비해 이런 문서를 작성한다고 하면 사랑과 믿음으로 엮어져야 할 결혼을 앞두고 벌써부터 이혼을 생각한다는 건 두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냐 하는 사람들도 있고, 결혼이 무슨 비지니스 계약이냐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자쪽 입장에선 특히 남자가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이런 계약서 따윌 쓰게 하면 안되는거 아니냐 하는 사람들도 있다. 혼전계약서가 희귀한 일이 아닌 미국에서도 아직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하물며 한국사람들의 정서로 그걸 좋게 보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혼전계약서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S와 결혼하기 전에 혼전계약서를 같이 만들고 거기에 서명했다. 혼전계약서를 쓰자는 건 물론 S의 생각이었다. 이혼을 한번 경험한 입장에서 또 다시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신중을 기하는 것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리고 계약의 내용도 내가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결혼 후 5년안에 이혼을 한다면 두 사람 간에는 자기가 번 수입 외의 다른 재산에 대한 권리가 없다, 결혼 전에 형성된 각자의 재산은 각자가 그대로 소유한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결혼 후 5년에서 10년 사이에 이혼을 하는 경우엔 얘기가 좀 달랐다. 그리고 10년 후에 이혼하면 그 때는 법원의 결정에 따른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어느 예술가 커플의 혼전계약서라는데.. 그러니까 혼전계약서는 쓰는 사람 마음이라고.

어느 예술가 커플의 혼전계약서라는데.. 그러니까 혼전계약서는 쓰는 사람 마음이라고.

미국에선 이혼을 하면 대부분의 경우 남자쪽에 경제적인 타격이 크다. 많은 경우 법원에선 여자쪽을 약자로 인정해서 심한 경우 결혼후 형성된 재산의 반을 여자에게 주라는 판결도 내린다. 때문에 두 사람의 경제력에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 돈이 많은 쪽-많은 경우 남자 쪽-에선 아무래도 이혼시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혼전계약서를 쓰길 원하게 된다.

나는 요즘처럼 이혼이 흔한 세상에선 이런 계약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에 하나 이혼을 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결혼을 앞둔 모든 사람들이 이런 과정을 한번쯤 거쳐 결혼한다면 결혼 후의 갈등이 훨씬 줄어들텐데..하는 생각이었다. 일단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선 두 사람의 재정상태, 자산, 수입, 채무상태를 죄다 공개해야 한다. 그러니 결혼 후에 숨겨뒀던 돈이나 빚 때문에 싸울 일이 없어진다. 그리고 우리의 경우엔 S가 소유하고 있던 집은 그의 돈으로 산 집이고 그의 명의로만 되어있으니 집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그가 책임지기로 계약서에 적어 넣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결혼 후에 통장관리는 어떻게 할 것이며 매달 지출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등등에 대해 심각하게 상의하게 됐다. 사실 돈문제는 결혼 전에 까놓고 얘기하기 껄끄러운면서 결혼 후에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배우자 간에 돈에 대한 의견차이가 크면 그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한 경우가 많다. 혼전계약서를 쓰면서 돈에 대해 꼬치꼬치 얘기하면서 우린 돈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의 생각이 많이 달랐다면 결혼 전에 알게 되었으니 파혼을 하던지, 아니면 결혼을 하되 이미 이런 차이를 알고 있으니 큰 폭탄은 맞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모르고 결혼하는 것보다는 나은 결과라는 얘기다.

사랑이 없는 결혼은 안되지만, 사랑만으로 행복한 결혼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두 사람이 혼전계약서를 쓰는 이유는 단지 돈문제만이 아닌 자신에게 중요한 다른 부분들을 결혼한 후에도 보호하기 위해서다. 결혼 후에 그것 때문에 매번 싸우느니 결혼 전에 깔끔하게 문서로 남기고 동의하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면서 상대방의 결혼관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상대방과 내가 얼마나 비슷한지 다른지도 알 수 있고, 아무리 오래 연애해도 파악이 안되는 그런 부분들을 파악할 수 있고 말이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혼전계약서를 쓰는게 아니냐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경험자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내가 S를 신뢰하지 못했다면 계약서에 서명하지 못했을거다. 그를 믿었기에 주저않고 서명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예 그와 결혼을 하지 않았을거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 둘다 그 계약서의 내용을 제대로 기억도 못하고 있을 정도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