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국 언론을 뜨겁게 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동성애자들도 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발언. 그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은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미국에서 아직도 법적으로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주는 그리 많지 않지만, 이미 많은 주에서는 동성 동거인에게 법적으로 이성 동거인과 같은 혜택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일했던 직장들, 그리고 현 직장에서도 동거하는 사이인 사람을 Domestic Partner라고 인정해주고 의료보험이나 그 밖의 혜택을 (내가 원한다면) 받을 수 있게 해준다. 이는 이성커플 뿐만 아니라 동성커플에게도 해당이 된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동성애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지 내 주위에서 볼 수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국에 온 뒤, 석사과정 중 만난 게이친구들이 몇 명 되고, 그 뒤에 일하면서는 더 많은 게이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게이임을 숨기지 않지만 그렇다고 유난을 떠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게이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경우와 딱 보면 게이인 경우가 반반 정도였던 것 같다. 어쨋거나 그들과 나의 차이점이라면 단지 좋아하는 사람이 이성이 아닌 동성이라는 점일 뿐이었다.

지금 직장의 부서장 하나도 게이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옷차림이나 풍기는 느낌이 약간 게이같다고 느꼈다. 그런데 며칠 뒤에 그녀가 자기 딸 얘기를 하는거다. ‘아, 게이가 아니었구나..’ 그리곤 며칠 뒤에 회식자리에서 그녀에게 어떻게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었는지 물어봤다. ‘내 파트너인 L(여자 이름) 이 박사과정을 하러 이곳 학교에 오게 되어서…그녀(She)랑 같이 오게된거지.’ 역시, 그녀는 게이였던 것이다. 그녀와 파트너는 딸 하나를 입양해서 잘 키우고 있다.

작년 부서 크리스마스 파티는 부부 동반, 파트너 동반이었다. 다들 남편, 아내, 애인들을 데리고 왔는데, 그중 신참인 여자 직원 J가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다. J의 여자친구는 파티에 온 사람들 중 가장 예쁘고 섹시해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녀와 J가 술을 시키려고 S와 내가 서있던 바 곁으로 왔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는 S가 J에게 불쑥 말을 하는데.. “XXX 블로그 쓰던 J 아니예요?” J는 약간 놀란듯 웃으면서 그렇다고 했다. 나중에 S에게 물어봤다. “그게 무슨 블로그야? 자기도 애독하던거야?” “어.. 애독까진 아니구.. J가 쓰던 그 블로그는 동성애를 다룬 블로그였는데 한 때 꽤 유명했었어.” 오..그럼 J의 섹시한 친구는 단순한 친구가 아닌거?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칠 때 내 눈에 띈 건 그녀의 허벅지에 올라가 있는 J의 손이 아닌가. 물론 J가 게이라고 회사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녀는 여전히 회사 잘 다니고 있다.

한국에선 아직도 동성애자라면 눈쌀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동성애자임이 알려지고도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회 분위기가 아직 그런데 동성결혼을 운운한다는 것은 시기상조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골수 기독교인들이나 보수주의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이에 대해 거부감도 별로 없고, 그들이 법적으로 이성애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동성결혼은 절대 허용되서는 안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지는 이해하기 힘들다. 결혼의 목적이 남녀가 자연적으로 잉태해서 애를 낳아야 하는 것 뿐이라면 동성결혼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겠다. 그렇다면 애를 원하지 않거나 애를 낳을 수 없는 남녀 역시 결혼할 수 없다는 얘기 아닌가?

2세 출산이 과연 결혼의 유일한 의의일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고, 자발적이건 비자발적이건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가 흔한 세상이다.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은 사랑하는 누군가와 인생을 함께 하면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보호막이자, 경제적인 이득을 누리고자 하는 비지니스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상대가 동성이건 이성이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평생 같이 살고 싶은 사람, 매일 매일 같이 잠자리에 들고 싶은 사람, 평생의 섹스파트너로 괜찮을 사람, 나를 지지해주고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 그리고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이라고 굳이 그렇지 않은 이성과 결혼을 해야한다는 게 말이 되나?

미국에 유학 나온 뒤 게이임을 공표한 내 대학동창이 있다. 그가 부모님께 그 사실을 말씀드렸을 때, 그의 부모님은 그 말을 믿지 않으셨단다. 네가 잠시 이상해진걸거다, 뭐 이런 식으로 마치 그가 게이인 사실을 전적으로 부정하려고 하셨단다. 그의 아버지는 몇 년 간 그와 얘기도 하려고 하지 않으셨단다. 하지만 수 년이 흐른 뒤, 그의 어머니는 남자건 여자건 네가 좋은 누군가와 만나 외롭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단다.

오바마의 동성결혼에 대한 발언을 들으며 많은 동성애자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는 동성결혼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모든 대통령들은 ‘그건 연방정부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고 각 주에서 알아서 인정하든지 말든지 할 문제’로 치부해 왔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도 결혼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 대통령은 오바마가 처음이고, 이건 보통 배짱으론 하기 힘든 말이다. 물론 오바마의 말은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고, 그도 이 문제를 연방정부에서 다룰 문제로 보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정치적으로 껄끄러운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솔직하게 피력했다는 점, 그리고 정치적인 위험 (많은 흑인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무릅쓰고도 시대와 현실에 부합하는 의견을 공표했다는 점에서 오바마는 남다른 대통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