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프랑스에서 20년 째 살고 계신 한 블로거의 글을 읽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해외이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이민이 그리 만만치 않고, 한국인으로서 한국에 사는 것이 가장 편하고 좋을 수 있다라는, 대충 그런 요지의 글이었다. 그 분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문득 나의 미국에서의 12년을 곰곰히 생각해보게 됐다. 처음 몇 년 간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혼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사는 것이 마냥 좋기만 했다.  하지만 10여년을 살아보니 마냥 싫기만 했던 한국생활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가끔 생기고, 마냥 좋았던 미국생활이 싫증나는 순간도 생기게 됐다. 오늘은 그래서 내가 미국에 살면서 느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한 번 나열해 보려고 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적는 글이니 다른 분들의 경험과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길..

미국에 살면서 좋은 점

1.  내 사생활과 내 선택에 가타부타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미국 사람들은 가족 간에도 별로 서로의 생활이나 선택에 대해 간섭이나 군소리를 하는 법이 별로 없다. 그러니 직장이나 친구 간에도 그런 일이 거의 없는 것은 당연. 한국에선 사생활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는 듯, 남에게 별걸 다 묻는 사람들이 넘치고 넘쳐나는데 반해, 미국에선 남의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선 묻는 것도 꺼리고, 대답을 안해도 그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없다. 사생활과 개인의 선택은 철저히 개인의 영역이니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리속에 뿌리 박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살기가 편하다. 나와 내 가족이 좋은대로 살면 되니까. 물론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2. 결혼 압박, 애기 압박, 덜 받으면서 살 수 있다.

1번과도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인데, 미혼 남녀의 경우 결혼하라는 소리를 덜 듣고, 결혼한 부부의 경우, 애기는 언제 낳을거냐는 소리를 덜 듣고 살 수 있어서 좋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 한국에선 마치 누구나 쉽게 결혼을 하고 애기를 낳는 것처럼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그런 얘기를 던진다.  미국에 살면선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또 결혼과 출산을 안하면 비정상으로 여기는 듯한 태도도 미국에선 볼 수가 없다. 나이가 찼는데도 싱글인 사람들을 보면, 뭐 이유가 있으니 안하고 있겠지, 제 짝을 못 만나서 안하고 있겠지, 결혼에 관심이 없나보지, 뭐 그렇게 짐작하고 말지 ‘왜 결혼을 안했어요?’ 라고 묻는 사람은 없다. S와 내가 우린 아이 안 가질 거라고 할 때, ‘왜 안가져?’ 라고 묻거나, ‘에이, 그래도 애는 가져야지’ 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한국사람들도 요즘은 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듣고 본 바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3.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 칼퇴근과 주말, 휴가가 대부분 보장된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을 보니 많은 경우 아침 7시쯤 집에서 나가 일마치고 집에 오면 거의 8-9시가 된다. 게다가 간혹 주말 근무에 야근도 심심치 않고. 내가 미국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6시 넘게 까지 회사에서 일한 적은 손에 꼽을 수 있을만큼 적다. 그것도 대부분은 내가 자진해서 늦게까지 일한거지, 상사가 시켜서 남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5시면 퇴근을 한다. 직종에 따라 주말에 일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재택근무가 가능하니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한국처럼 회식이 매주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저녁시간과 주말은 철저히 가족과 함께, 혹은 혼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보낼 수 있다.

휴가를 일년 중 아무때나 쓸 수 있는 것도 좋은 점 중 하나다. 내가 맡고 있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에서는 일주일이건 이주일이건 아무때나 휴가를 낼 수 있다. 한국에서 회사생활 할 적엔 ‘여름휴가’란 명목으로 여름철에만 일주일 안 쪽으로 휴가를 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4. 집 값이 싸다.

미국에서 집 값이 비싸다고 하는 뉴욕 맨하탄이나 샌프란시스코도 서울보다는 싸다. 그런 대도시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곳 같은 중소도시에선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집을 살 수가 있다.  우리 동네에서 꽤 비싸다고 하는 집도 한국 돈 10-15억이면 충분하니 말이다.

참고로 우리 동네의 한 저택인데, 한국돈으로 14억정도에 팔렸다. 방이 6개, 화장실이 네 개던가?

5.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이건 미국 어디 사느냐에 따라 많이 차이가 날 수 있다. 도시와 시골은 다양성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다행히 내가 사는 동네는 대도시는 아니지만 큰 대학이 몇 개 있고 기업체들도 꽤 있는 도시라 외국인 학생들, 교수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유학생 생활을 오래하면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고. 어젠 우리 부부와 친구 부부, 이렇게 넷이 저녁을 먹었는데 출신국들을 보니, 미국, 한국, 엘살바도르, 세르비아..  우리의 결혼식 사진을 보면서 S왈, “이거 무슨 유엔 총회 파티같어”. 그도 그럴 것이 손님들의 절반 이상은 미국 아니면 한국 사람들이었지만, 다른 나라 – 한국, 인도, 불가리아, 중국, 푸엘토리코, 엘살바도르, 브라질, 스위스 – 에서 온 손님들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댜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배우게 되고, 세상이 참 넓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는 점. 한국에선 조금 힘들지 않을까.

 

미국에 살면서 나쁜 점

1. 음식

한국에 살 땐 한식을 엄청 좋아한 것도 아니었는데, 미국에 오래 살아서 그런건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건지 요즘은 한식만 먹고 싶어진다. 미국에서도 한식을 먹자면 먹을만한 곳들은 있지만, 아무래도 서울의 오만가지 음식점들에 비할바가 못된다.

한식을 맘껏 못먹는 아쉬움은 둘째치고, 일단 미국의 대부분의 음식점들의 음식은 돈주고 사먹기 아깝다. 물론 맛있다고 소문난 집들은 맛있지만, 그런 집들은 몇 안되고, 대부분은 비싸다…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서 먹었을 경우 흡족한 경우는 글쎄.. 20프로나 될까?

맛도 맛이지만 미국에선 일반 음식점에서 자주 먹다가는 살찌기 딱 쉽상이다.  미국 음식이란게 채소는 별로 없고 대부분 고기 위주, 게다가 음식마다 치즈가 잔뜩 들어가거나 아니면 기름에 바짝 튀겨지거나, 설탕과 소금이 잔뜩 들어가거나.. 그래서 재료의 맛보다는 기름맛, 치즈맛, 설탕맛, 소금맛이 강한 음식들이 많다. 그런 이유로 나와  S는 외식할 때 아시아 음식점을 많이 가거나 아니면 돈을 좀 더 주고라도 괜찮은 음식점에만 가지 절대 체인음식점은 찾지 않는다.

어쨋거나 식문화는 한국이 훠얼씬 낫다!

2. 대중교통 시설 미비

뉴욕이라면 그나마 지하철과 버스, 택시가 많아 대중교통에만 의존하고도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그 밖의 대부분의 도시에선 차가 없이는 자유롭게 나다니기 힘든 곳이 미국이다.  게다가 그나마 있는 대중교통 시설은 낡고 더러워서 사용하게 좀 껄끄름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운전하고 다니기는 서울보다 쉽지만, 가끔은 차없이 다니면서 필요하면 훌쩍 택시 잡아탈 수 있는 서울이 그립다. 서울 갈 때마다 대중교통은 한국이 최고라고 다시금 느끼고 온다.

3. 의료보험과 의료체계

오바마 대통령이 적극 밀어부치고 있는 의료체계 개혁안이 과연 성공적으로 실현이 될지 말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현재의 미국 의료체계가 문제투성이인 건 사실이다.  한국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료보험에 들어있고 의료보험이 있으면 어느 병원을 가도 상관이 없다.  미국은 국가가 관리하는 의료보험이 아닌 민영 의료보험이라 의료보험 종류는 무한가지인데다가,  내가 어떤 회사의 어떤 보험에 가입했느냐에 따라 갈 수 있는 병원과 의사가 제한이 된다. 그래서 의료보험은 사는 것부터 골치가 아프고, 산 뒤에도 어떤 건 보험처리가 되고 어떤 건 안되고, 이런거 저런거 제대로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나로서는)하다고나 할까.

보험료도 한국에 비하면 훨씬 비싸고, 의사 한 번 찾아보려면 예약을 적어도 몇 주 전에 해야하고.. 의사와 간호사 숫자가 전국적으로 볼 때 부족하다고 하는데 그게 서비스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4. 이방인이라는 생각

아무리 미국에 오래 살아도 내가 한국사람인 것엔 변함이 없다. 미국인과 결혼을 했어도 한국을 나보다 더 좋아하는 남편 덕에 더 미국화되지 않고 오히려 더 한국것에 예전에 없었던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여기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이곳은 내가 발 붙이고 살 곳이라는 느낌보다는 언젠가는 떠나가게 될 곳이라는 느낌이 더 많이 든다.

그런데 이걸 나쁜 점이라고 해야할 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고 살기 때문인지, 항상 어디론가 떠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홀가분해지기도 한다.

5.  너무 멀리 있는 내 가족

누가 뭐래도 엄마 아빠 자주 못 보는 것이 가장 큰 서러움이다. 특히 나이들 수록 더 그게 서글퍼진다. 그래서 올해와 내년엔 부모님과의 여행을 계획 중이다.

미국에 오래 사신 분들마다 나름대로 느끼시는 바, 경험하신 바가 다를텐데, 혹시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 있다면 댓글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