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후배와 며칠 전에 만나 수다를 떨었다.  그녀는 나보다 일찍 결혼을 해서 아이도 하나 낳은 고참 유부녀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미국 유학중에 만나 결혼을 했고, 그들의 가족은 다 한국에 있는, 토종 한국인이다. 그 후배가 결혼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만날 때마다 그녀의 시댁 얘기, 특히 시어머니와 시누이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어왔는데,  들을 때 마다 ‘참 그걸 참고 아무 말 안하는 니가 대단하다’라고 해주고 싶었다. 물론 그 말을 대놓고 한 적은 손에 꼽지만서두..

며칠 전에 만난 것도 한국에 5년만에 돌아가 가족들을 방문하고 돌아온  그녀의 시어머니와 시누이에 대한 속풀이를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한마다 했다.

“니 얘기를 들어보면, 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약자에겐 강하게 나오고 강자에겐 함부로 못하는, 딱 그런 스타일인 것 같아. 네가 처음부터 길을 잘못들인거야. 처음부터 좋은 건 좋다, 싫은 건 싫다, 아닌 건 아닌거다, 딱 얘기를 했었어야지. 그럼 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더라도 그 사람들이 계속 그렇게 너한테 막말을 하진 못했을거야.”

“언니 말이 정말 맞어. 그래서 이번에 가선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했어. 이젠 무조건 네네 하지 않을거야. ”

내 후배는 나와 달리 성격이 착해서 남한테 싫은 말을 잘 못하는 편이라 시댁에도 지금까지 상냥하게 잘하려고 해왔다. 그런데 이젠 갈 때까지 간 모양이다. 사실 나 같았으면 몇 년 전에 깽판을 냈을거다.  다행히 그녀의 남편도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전적으로 그녀 편이라 앞으로는 마음 고생 좀 덜하고 살겠구나 싶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이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시어머니 댁에 가는거 싫고 오시는 것도 그다지 반갑지 않지만, 내 후배 얘기를 들으니 그런 시어머니 만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이제는 내 시어머니한테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사람과 결혼해서 시댁 때문에 골치아픈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시어머니가 불편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다행히(?) S 말로는 내 시어머니도 나를 좀 무서워 하신단다.  내가 이 얘길 했더니 후배 왈,  “언니, 그건 좋은거야. 시어머니도 며느리 어려운 줄 아셔야 돼. 서로 좀 어려워야 말도 조심하고 행동도 조심하고 그러지.”

나도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내 시어머니도 S 말로는 많이 바뀌셨다고 한다.  S의 전부인과는 사이가 안 좋았는데 그 이유는 엄마가 자기 집에 와서 마치  그녀의 집인양 실내 장식을 바꾸기도 하시고, 물건도 자기 마음대로 어질러 놓으시고, 그래서 S의 전부인이 항상 신경질을 냈다고 했다. 난 전부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나 같아도 화났겠다.  그래서 S와 집을 합칠 때 나는 확실하게 말했다. “앞으론 이 집의 모든 건 우리 둘이 합의해서 결정하기다. 내 취향 아닌 건 절대 들어놓지 않을거야. 알았지?”  그 뒤로 시어머니가 가끔 가구나 커튼 같은 장식거리를 언급하시면, 나와 S는 “그건 저희 취향이 아니예요.”라고 딱 잘라 말했다.

매년 명절 때마다 시어머니와 S가 주로 우리집에서 요리를 하시고 난 거들기만 했었는데, 작년 크리스마스엔 S에게 말했다.  “올해 크리스마스 디너는 내가 요리할거야. 우리 집에서 하는 디너니까. 어머니께 음식준비는 우리가 다 할거라고 말씀드려줘. 도와주시는건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메뉴선택과 요리는 내가 하겠다고.”  다 한 가족이니 누가 요리를 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시어머니께 이 집의 안주인은 접니다라고 확실히 보여드리고 싶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S와 단둘이 외식을 했는데, 그 때 내가 물어봤다.

“혹시 어머니가 내가 요리하겠다고 한거에 대해 뭐라고 안하셨어?”

“하셨지.”

“뭐라고 하셨어? 빨랑 말해봐.”

“엄마가 그러셨어.  내 아들 집이 이젠 내 아들의 집일 뿐만 아니라 내 아들의 아내 집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는 있지만, 그걸 정말로 인정하기가 아직도 힘들다구. ”

“이해해 주시는게 어디야.”

“그렇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엄마도 적응될거야. 그런 점에서 네가 크리스마스 디너를 맡아 하겠다고 한 건 잘한 짓이야. ”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응.  우리집은 너의 영역이라는 걸 엄마한테 확실하게 알려드린 셈이니까. 무례하지도 않고 딱 시기적절하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어려우면서도 서로 간의 거리를 지키면 참으로 쉬울 수 있는 관계다.  문제는 많은 시어머니들이 그 거리를 지키려고 하지 않는데 있다. 당신의 아들과 며느리를 위하는 길은 그들에게 잘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많은 시어머니들이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물론 그것이 남남처럼 살자는 얘기는 아니다. 서로 챙길 땐 챙기고 중요한 일은 같이 의논도 하고, 그런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당신의 아들과 며느리에게 당신이 항상 최우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섭섭해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성들은 앞으로 며느리를 보게 된다면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내가 당해서 싫었던 일들을 그녀가 다시 겪지 않도록 해주자.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이 되풀이되지 않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