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는 말을 영어와 한국어로 번갈아가며 한다. 연애할 때엔 오히려 별로 안 그랬던 것 같은데, 결혼하기로 둘이 결심한 뒤부터 애정표현을 더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둘이 처음으로 같이 한국에 가기 전, 나는 주의를 줬다. ‘한국에선 여기서처럼 너무 애정표현을 많이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니까 좀 자제해. 알았지?’, ‘그럼..부모님 앞에선 키스도 못하는거야?’, ‘당연히 안되지.’, ‘흠.. 그러기 싫은데.’ 어쨋거나 나름 주의를 주고 서울에 도착, 내 부모님과 처음으로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우리도 부모님도 술이 좀 들어가니 다들 기분이 좋아 룰루랄라하는 분위기였는데, S가 나를 빤히 보더니 ‘I love you.’하는거다. 그 정도 영어는 알아들으실 수 있는 내 부모님의 반응을 보니, 아빠는 들은척 만척, 엄마는 ‘어머나, 호호’하는 듯한 얼굴 표정. 엄마는 무덤덤하게 있는 아빠를 쿡 찌르며 ‘나한테도 알려뷰 해줘’라며 귀여운척을 하셨다. 아빠, 힐끔 엄마를 보더니, ‘결혼할 때 했으면 됐지. 뭘 또 해?’
이 에피소드는 S가 애정표현에 인색한 한국남자에 대해 얘기할 때 두고두고 써먹는 소재가 됐다. S는 그 뒤로 가끔 농담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아껴야 좋은 한국 남자가 되지’라며 나를 웃기곤 했다.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준다고 여전히 달콤한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가끔은 정말 이게 입버릇이 아닌지, 이래서 여자친구가 끊임없이 있었던게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긴 했었다. 하지만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을 때 그가 던지는 말을 들으면 그게 입버릇이듯 뭐든 상관없이 마냥 행복해진다. 주로 그가 하는 말들은,
사랑해.
난 정말로 운이 좋아. 너 같은 와이프를 얻게 되어서.
넌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감도 못잡을거야.
난 너무 행복해.
뭐 주로 이런 레파토리다.
어느 날, 자기 전 그가 이런 말을 한 직후였다. 난 정말로 궁금해서 물었다.
‘자기야, 난 사랑한다는 말 듣는 것도 좋구, 다른 닭살멘트도 다 좋은데, 이러다가 너무 이런 말을 듣는 것에 익숙해 질까봐 좀 걱정돼.’
‘어.. 나두 그런 걱정을 좀 하긴 했어. 그런데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 만약에 나중에 이런 말을 하고 싶어도 자기가 내 곁에 없는 순간이 오면 어떡하지? 그런 상황에 처하면 엄청 후회할거 같은거야. 누가 알아? 내일이라도 차사고로 우리 둘 중에 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거 아냐. 물론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지만. 그 때가서 후회하기 보다는 지금, 할 수 있을 때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고 얼마나 고마와하고 행복해하는지 말하고 싶은거야. 이게 감정낭비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내 눈가가 찡해졌다. 그 뒤론 나도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고 하게 됐다.
엄마에게 이런 얘기를 전화로 했더니, 울엄마 왈,
‘그래, S에게 할 수 있을 때 많이 많이 사랑한다는 말하면서 살라고 전해라.’
아마도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사위가 밉지는 않나보다.
March 14, 2017 at 5:51 am
있을때 표현 못하면 없을때 후회하는거 맞는거같아요
January 23, 2016 at 11:04 am
읽으면서 영화 About time ost 곡 ‘The luckiest’가 생각났어요.
‘난 정말 운이 좋아 너를 만났으니까’
저 노래 들을 때마다 정말정말 저런 닭살 멘트 해주는 남자친구 아니 남편을 만나고 싶은 게 인생의 꿈이 되어 버렸는데…실제 그런 분과 사시니 그런 말 들을 때의 그 기분이 글에서 그대로 전해 지는 듯 해요. 두 분의 사랑이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
January 24, 2016 at 2:37 pm
우린 운이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으로 항상 고마워하며 살아요. ㅎㅎ
January 4, 2015 at 10:55 am
어머너무부러워요~~~ 사랑무척많이받으시면서사시네요~~매일매일 이뻐지시겠어요 ㅎㅎ
January 5, 2015 at 11:35 pm
사랑을 많이 받아도 나이드는 건 속일 수가 없어요..흑흑..
November 2, 2014 at 9:01 pm
저도 눈시울이ㅠㅠ 감동이네요. 제 남친도 아낌없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거든요! 무엇이든 표현하는 것이 관계에 있어서 좋다고 봐요 ㅎㅎ 잘보고 갑니다 ^^
November 3, 2014 at 12:25 am
댓글 감사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끼지 않는게 좋죠. ^^
February 9, 2012 at 2:56 am
ㅠㅠ 보다가 눈시울이 붉어졋어요
저 남자친구랑 싸워서 지금 서로 상처받아서 말 안한지 내일이면 이틀되는데….내일 아침에 가서 사랑한다고 해줘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February 9, 2012 at 9:26 pm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친구랑 잘 화해하시길 바래요~
January 6, 2012 at 7:24 am
남편분이 저랑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시네요 ^^
하지만 저는 솔로….ㅠ
January 6, 2012 at 7:16 pm
짝을 찾게 되시면 많이 많이 애정표현을 해주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