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여자 고등학생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이메일을 보낸 이유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고.. 내 블로그를 읽고 성에 대해, 피임에 대해, 남녀간의 관계에 대해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여성으로서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고등학생답지 않게 무척이나 성숙한 어조에, 맞춤법 하나 틀림없고 문장 하나 어색하지 않은 글솜씨로 써내려간 이메일을 읽으면서, 우선은 뿌듯했고, 그 분에게 감사했고, 그리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요즘은 중고등학생들도 남자친구 여자친구 사귀는 것이 예사라는 얘기를 그 또래 자식들이 있는 사촌들로부터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사실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에도 학생들의 이성교제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더우기 나는 남녀공학을 다녔던지라 주변에서 커플인 학생들을 숱하게 보면서 고등학교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데이트란 것을 하게 됐다. 상대는 1학년 때부터 좋아했던 동기 남학생. 용감하게 발렌타인 데이에 초코렛을 준 것을 시발로 우리는 소위 연애질을 시작했다.

그 연애질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편지. 요즘에도 연애편지를 쓰는 남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각하면 편지만큼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없다. 그에게 편지를 받는 날이면 일기장엔 별이 그려졌고, 그에게 편지 한 통을 쓰기 위해 시집을 몇 권씩 들춰가며 마음에 드는 시를 찾기 위해 몇 시간을 보낸 적도 허다했다. 학교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고, 다른 친구들이 없을 땐 말 한 두마디 나누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즐거워지곤 했다. 그러다가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같이 영화나 연극을 보러 갔다. 둘 다 연극을 좋아해서 ‘칠수와 만수’, ‘아가씨와 건달들’ 같은 히트 연극들을 꽤 많이 봤다.

그렇게 일 년 정도 연애를 하면서도 뽀뽀는 커녕 손도 제대로 한 번 안 잡았다고 하면 요즘 학생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난 그 당시엔 당연히 스킨십은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땀이 나고 얼굴이 빨개지고 했으니.. 남자친구도 나에게 무척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그 때의 우리는 참 순수하게 사랑했고 지금까지도 그 추억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에게 받았던 모든 편지들과 나의 일기장들도 함께.

고3이 되면서 그와는 점점 멀어졌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그렇게 연애질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난 공부에 열중했다. 그도 나에게 보내던 편지를 끊고 공부에 매진하는 듯 보였다. 그리곤 난 대학에 합격했고 그는 재수의 길을 걷게 되면서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됐다.

그 때의 경험이 지금까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둘 다 학생이고 미성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어른 흉내를 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공부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았고, 학생 신분에 어긋나는 일도 하지 않았다.

요즘의 10대들은 어떨까? 이성친구와의 스킨십과 섹스를 당연히 거쳐야 할 단계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난 그들에게 딱 두 가지만 말하고 싶다.

1. 내가 원하지 않고 상대방이 원하지 않으면 절대 하지 마라.

특히 여학생들의 경우, 남자친구가 원하니까 할 수 없이 스킨십과 섹스까지 하게 되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된다. 두 사람이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의 섹스
가 아닌 섹스는 좋은 기억으로 남지도 않고 후회만을 남기게 된다. 이건 아닌데.. 이래도 되는걸까.. 이런 생각이 든다면 섹스를 하지 말아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경험은 숱하게 하게 된다. 연애를 하는 사이이지만 왠지 섹스까지는 내키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과는 결국 무슨 이유에서든 헤어지게 된다.

2. 후회할 짓은 절대 하지 마라.

섹스 후에 후회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것은 ‘원치않는 임신’이다. 한 번 만으로 임신이 잘 안되니 걱정말라든지, 내가 잘 알아서 조절할께라든지, 내가 책임질께라든지, 남자친구가 이따위 소리를 하면서 콘돔없이 섹스하려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헤어지는 것이 낫다.

남자들은 이런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다. 자기 몸으로 애를 낳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여성에게 임신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일생일대의 가장 큰 변화다. 그런 임신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고 싶은가? 한 번의 실수로 인생의 궤도가 바뀌게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고 절대 콘돔없는 섹스는 하지 말자. 콘돔과 피임약 외의 다른 피임법들은 성공률이 낮으니 믿어선 안된다. 특히나 한창 혈기왕성한 10대의 섹스는 더욱 임신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나보고 구세대라고 해도 할 말 없지만 그 시절을 경험한 사람의 입장에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섹스를 할 시간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다. 좋아하는 감정, 사랑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는 것만으로 고등학생 때의 연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 때의 연애를 훗날 돌이켜 볼 때 , ‘아, 그 때 같이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느낄 수 있는 경험으로 남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