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끝났다. 모든 것이 준비한 대로 큰 차질없이 진행되었고, 와주신 분들이 다들 즐겁게 놀다 가셨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결혼식은 확실히 오후 느즈막히 하는 것이 좋다. 내 결혼식도 5시였는데, 만약 1시 정도만 되었더라도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서둘러야 했을 뻔 했다. 결혼식 당일은 무조건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느긋하게 준비하는 것이 실수를 방지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결혼식을 가면 보통 하객들이 식 전에 신부 대기실로 가서 신부 얼굴을 보는 것이 상례인데, 미국에선 신부는 식장에 들어설 때 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나 S는 내가 신부입장을 할 때까지 나의 신부 모습을 절대 보지 않겠다고 고집해서 드레스도 보여주지 않고, 사진도 안 찍고, 입장할 때 까지 나를 절대 보이지 않게 하려고 식장 매니저가 우리의 동선을 일일이 보고해 줄 정도였다.

그렇게 하기를 잘했다.

하객들이 일어서고 나와 아빠가 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저만치서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는 S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그의 눈에서 눈물이..엥? 정말로 우는거야? 그의 손을 잡고 마주서서 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진짜로 눈물이 글썽인다. 나중에 왜 울었냐고 물었더니 내가 너무 아름다왔단다. 헐헐… 그래.. 그렇게 꽁깍지가 씌여야 결혼을 하는거지.

식 끝나고 우리와 가족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 하객들은 칵테일 장소로 이동해서 한 시간 가량 술과 애피타이저를 드시면서 서로 친해지신듯 했다. 피로연은 결혼식 후 한 시간 뒤에 시작되었다. 미국 결혼식 피로연은 어느 정도 정해진 식순에 따라 진행되는데 일단은 신랑 신부 부모님들이 입장을 하시고, 들러리와 베스트맨 (많은 경우 여러 명이라 두 명씩 짝지워 입장)이 입장을 한다. 보통은 음악에 맞추어 입장을 하기 때문에 우리도 음악을 골랐는데, 그 음악은 내가 사랑하는 Queen의 Don’t Stop Me Now.

그리곤 나와 S가 Barry White의 You’re the first, my last, my everything에 맞춰 입장했다.

다들 자리에 앉은 후, 이어지는 순서는 베스트맨과 들러리의 짧은 연설. 내 절친한 후배 H가 나의 들러리를 맡았는데 그녀의 연설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자세한 내용은 쓰면 내 자랑이 될 것 같으니 생략하기로..

압권은 아빠의 스피치. 영어를 잘 못하시는데에도 굳이 영어로 연설을 하시겠다고 해서 내가 영어로 번역해드린 짤막한 연설문을 달달 외우셨다. 하지만 생전 처음, 그것도 외국인들이 더 많은 자리에서 영어로 한마디 하시려니 긴장되는 건 당연. 더듬 더듬 말을 이어가시던 중,

“나는 지금 행복하지만 섭섭하다…. 왜냐하면…

마 침 내.. 내 딸이 결혼을 하기 때문이다.”

라고 해서 좌중을 폭소의 도가니로 만드셨다.

우리의 웨딩케익

미국에선 결혼을 꼭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고, 그래서인지 신부 아버지가 내 딸이 결혼해서 시원하다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못봤다고 내 미국인 친구들에게 들었다. 그런데 정말 아빠의 ‘마 침 내 (Finally)’는 늙은 딸을 시집보내 시원하다라는 감정이 그대로 실려 모든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그 뒤론 저녁식사와 술에 이어 웨딩케익 커팅, 그리곤 이어지는 춤. 10시 반까지 발이 아프도록 춤추고 테이블마다 다니며 인사하고, 마무리하고 호텔방으로 돌아오니 거의 11시 반이다. 흠.. 누구는 결혼식하고 코피까지 흘렸다는데, 난 왜 하나도 안 피곤한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S와 오랫만에 둘 만의 오붓한 시간(ㅎㅎ)을 보냈다.

그 날 밤,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내가 인생을 헛 살진 않았구나라는 생각. 남들 앞에 떳떳이 내놓을만한 것 하나 없이 룰루랄라 살아 온 나에 대해 부모님이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그 전엔 종종 했었지만, 결혼식에 미국 각지, 그리고 한국에서까지 날아온 나의 많은 친구들을 보시면서 부모님은 흐뭇해 하셨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 그들이 있기에 내 인생이 풍요롭고 행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나와 S의 부모님께 잘해야겠다는 생각. 이런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지만 앞으로 부모님을 만나 이렇게 긴 시간을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올까. 비행기 타는 것도 귀찮고 표도 아깝다고 한국도 몇 년에 한 번 꼴로 갔었는데, 이젠 결혼했으니 적어도 일년에 한 번은 찾아뵈야겠다는 생각. S와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 결혼했다고 달라질 건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항상 초심을 잃지 말자는 생각. 등등등..

그래서 첫날밤, 잠을 설치고 말았다.

피로연장 - S와 나의 첫 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