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이틀 전에 일어난 일이다. 거의 퇴근시간이 가까와 왔을즈음, S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녁에 같이 어딜 가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취소해야 되겠다고 하는거다.

“왜? 무슨 일 있어?”
“어.. 나 해고 당했어.”
그리곤 집에 가는 길이라며 집에서 얘기하자고 했다. 세상에나…

그의 회사가 좀 심상치 않은 것 같긴 했고, 그의 자리도 조금 불안해 보여 다른 직장을 알아보자고 둘이 얘길 하긴 했었다. 하지만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확실히 괜찮을 거라며 내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다른 직장을 알아보겠다고 얘기 한 것이 엊그제였는데…. 집에 가는 길에 계속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집 공사를 시작해서 돈 나갈 일만 있는데, 결혼식도 몇 달 안 남았는데.. 요즘 직장 못잡는 사람 많다는데 혹시 몇 달동안 실직자 신세가 되면 어쩌나.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구…. 이런저런 별별 걱정을 다 하면서 차를 몰았다.

집에 와서 얘길 들어보니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최악은 아니었다. S가 지난 6여년 동안 만들고 운영해오던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다른 소프트웨어로 대치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사실화 되었고, 거기에 더해 회사가 올해는 꼭 흑자를 내기 위해 갖은 비용을 절감하려고 한다는 얘기였다. 팀원 중에 가장 연봉이 높은 S가 타겟이 된건 당연. 게다가 그가 주도해온 소프트웨어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된다니 그가 이 회사에 남아있을 이유는 더더욱 희박해질 수 밖에. 그래서 그의 보스가 오늘 이 얘기를 하면서 내년 2월까지는 정식 직원으로 월급과 그 밖의 혜택을 다 줄테니 그 안에 다른 직장을 찾는 일에 전념하라고 했단다.

S는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거나 침울해하지 않았다. 대신 굉장히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새 직장을 못구할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 내가 2월까지 직장을 못잡으면 그 때부턴 네 월급에 한동안 의존해야 되니까 한동안은 쓸데없는 지출은 다 줄여야 돼. 외식도 자제하고, 쇼핑도 자제하고.”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S는 당장 이력서 준비에 돌입했다. 페이스북에도 새 직장을 찾는다고 올렸다. 그랬더니 며칠 새에 수 명의 친구들이 자기 회사에 자리있다며 연락을 해왔다. 유명 구직 사이트에 업데이트한 이력서를 올리자마자 헤드헌터들로부터 오는 전화받기 바빴다. 최근에 직장을 옮기면서 인터뷰와 커버레터 쓰는데 나름 도가 텄던 나인지라 열심히 S의 커버레터를 읽어주고 수정해주고, 이런 저런 조언도 해줬다. 맘같아선 시간표를 짜주고 ‘이대로 해!’ 라고 하고 싶었지만, 자존심 상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했고, 멍청한 남자가 아니니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믿고 가능한한 그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뒀다.

테크니컬 인터뷰에 대비해서 공부도 많이 해야되고 (학교를 졸업한지 너무 오래되었으니 인터뷰용 기술상식을 다 까먹었기에..), 남은 회사일도 간간히 해야되고, 그러면서 전공관련 블로그도 시작했다. 여기저기 오프닝이 있는지 검색하는 것도 매일의 일과인건 당연하고. 그러면서 내가 지금은 가장노릇을 하고 있는거라면서 내가 퇴근하면 저녁 밥도 해주려고 한다. (사실 밥은 내가 더 많이 하는 듯.. 직장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해고 소식을 들은지 이 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인터뷰를 몇 번 했고, 이번 주에도 몇 번의 인터뷰가 남아있다. 아마도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엔 인터뷰 하자는 회사가 없을테니 이번 주가 지나면 헤드헌터들의 전화도 확 줄어들 것이고, 회사들도 연락이 뜸해질 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희망적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S나 나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우선은 커리어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S는 석사 학위를 따는 것에 대해 고려하게 되었고, 나는 현직장에서 너무 오래되기 전에 다음 직장을 미리미리 알아보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S를 정말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위기를 같이 헤쳐나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조금도 힘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 주말 저녁, 간단하게 파스타와 샐러드로 저녁상을 차렸다. 먹으려고 하는데 S가 갑자기 “잠깐만. 먹기 전에 할 일이 있어.” 하더니 내 옆에 무릎을 꿇고 내 손을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나한테 해준 모든 것에 너무너무 고마워. 너를 만나고, 너와 결혼하게 되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앞으로 널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꺼야.”

눈물이 그렁그렁한 내 눈에 비친 그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렸다.

왜 우리가 Wall-E와 Eve 같다는 생각이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