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후배 P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둘이 만난지도 벌써 1년이 거진 되어가는데, 그동안 P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둘이 거의 결혼까지도 생각하고 있고, 이미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수차례 얘기했다고. 남자친구의 부모님도 몇 번을 만났고, 이번 겨울엔 둘이 같이 한국에 가서 P의 부모님을 만날 계획이란다. 남자친구는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고 외모도 듬직하게 생겨 별로 흠잡을데 없어 보이는 일등 신랑감으로 보였다. 그동안 결혼하고 싶다고, 그리고 애를 가지고 싶다고 항상 소망해 오던 그녀에게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다니. 게다가 둘이 성격도 잘 맞는 것 같고, 논리적인 면도 비슷하고, 여러모로 잘 맞는 것 같아 더더욱 좋은 상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P가 불쑥 채팅으로 말을 건넸다.
P:  언니, C (그녀의 남자친구)가 직장을 옮기고 싶어해.

나:  그래? 왜?”

P:  로펌에서 일하는게 너무 너무 싫대. 사실 일도 많긴 많지만, 일이 많은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단순히 일하는 기계로 생각하는 로펌 문화가 싫대. 같이 일하는 변호사들도 싫고.

나:  그럼 딴 직장을 알아봐야겠네. 그렇게 싫은 일을 매일 하면서 어떻게 사냐.

P: 그렇지, 나도 걔가 자기 일에 행복하고 만족하지 못한게 싫어. 그런데 문제는..

나: 문제는?

P: 걔가 알아보고 있는 일자리들이 다 공공부문이나 정부직 자리들인데 연봉이 턱도 없이 낮아.

나: 얼만데?

P: 지금 인터뷰 하나 들어온 자리는 시작이 $30,000 이래. 지금 걔 연봉이 $160,000인데, 오분의 일도 안되는거야. (참고로 말씀드리면 연봉 $30,000 정도면 대졸 신입사원이 받는 연봉 중에서도 낮은 편.)

나: 음, 좀 많이 낮네…

P: 그렇지? 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나: 걘 그 자리에 만족스러워해?

P: 아직 인터뷰만 잡힌 상태이니 뭐.. 인터뷰를 해봐야 알지.

나: 그럼 아직 그 자리로 갈지 안갈지도 모르는거 아냐.

P: 모르지.

나: 그럼 지금은 걔한테 아무말도 하지마.

P: 알았어. 하지만 만약 그 자리에 합격을 하면.. 그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걔는 공공부문에서 일하면서 뭔가 보람있고 세상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해. 자긴 돈엔 별로 관심이 없대. 그래서 내가 그랬지. 만약 우리가 애를 가지면 돈이 필요하다고.

나: 그랬더니 뭐래?

P: 자긴 애를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정확히 모른대. 그러면서 자기는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도 없대. 만약 돈이 살면서 문제가 되면 그 때가서 직장을 옮기면 된다고… 지금 직장은 어쨋거나 너무 너무 싫대.

나: 걔가 맞는 말을 했네. 너흰 아직 애가 있는 것도 아니잖어. 그리고 돈이 얼마나 들지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고.

P: 그건 그렇지.

나: 그렇기 때문에 네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져. 그리고 C는 3만불 가지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할 거구.

P: 3만불로 못살아. 걘 그동안 저금해 둔 돈을 아마 써야될 걸.

나: 어쨋건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싶어하니까 하게 내버려 둬. 누가 아냐. 나중에 공공부문 일이 싫어질 수도 있잖어.

P: 그럴수도 있지. 하지만 만약 결혼해서 돈 때문에 맨날 싸우게 되면 어떻게 해?

나: 왜 돈 때문에 맨날 싸울 것 같아? 만약 너랑 걔랑 돈에 대해 다른 기대치를 가지고 있다면 지금 얘기하는게 좋을 걸. 결혼하기 전에.

P: 만약 그의 월급이 유모 월급 줄 만큼도 안된다면 난 미쳐 버릴 거 같어. 그럼 내가 성공해야 된다는 부담감을 느낄거고… 우리는 분명 돈에 대해 다른 기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심한 차이는 아니야.

나: 흠.. 내가 보기엔 심한 차이 같은데?

P: 정말?

나: 적어도 니 얘기로만 봐선 그렇다고 보여.

P: 그럼 돈에 대해 다른 기대치를 가지고 있다면 헤어져야 할까?

나: 네 생각에 너희 둘이 타협할 수 없을 것 같다면 아마도 헤어지는게 낫겠지. C는 아마 네가 좋은 커리어를 가지고 있으니까 너희 둘이 같이 벌면 충분히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아닐까?

P: 걔가 자긴 얼마를 벌든 우리가 쓰는 것의 반은 내겠다고 했어. 말이 안되지.

나: ㅎㅎ.. 걔가 3만불을 벌면 너희 둘인 씀씀이를 줄여야 되겠지. 걔는 그래도 괜찮을거야.

P: 문제는 우리 둘다 앞으로 걔의 커리어와 나의 기대치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거야. 솔직히 얼마를 벌어야 내가 행복할지 나도 지금은 모르겠어. 확실한건 내 기대치가 그의 기대치보다는 높다는 사실이지.

나: 흠.. 그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너흰 둘다 돈을 잘 벌 수 있는 능력이 있잖어. 🙂 이렇게 생각을 해. 네 소득외에 다른 소득은 없다고. 그리고 모든 인생 계획을 너의 소득에 맞게 세워. 사실 최악의 경우.. 결혼을 못하고 혼자 살면 가능한 상황이잖아?

P: 솔직히 말하면 난 남자가 여자보단 돈을 많이 벌어야 된다고 생각해.

나: 여자가 돈을 더 많이 버는게 어때서? 네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생각을 가진 남자를 골랐어야지. 하지만 요즘 남자들중에 그런 생각 가진 남자 많지 않을걸. 어쨋거나 내 얘기는 네가 C의 소득이 아예 없다라고 생각하고 인생 계획을 짜면 모든게 간단해진단 얘기야.

P: 애가 생긴 후에도?

나: 그렇지. 애가 생기면 네 소득 안에서 보육비를 해결하도록 다른 지출을 줄여야겠지. 만약 기타 소득이 있다면 – 남편의 소득이겠지 – 그럼 공돈이 생긴 셈이니 더욱 좋은거고. 너같이 능력있고 돈 잘버는 애는 남자의 소득에 너무 의존할 필요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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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긴 채팅 후, 곰곰히 생각해 봤다. 난 한번도 꼭 결혼을 할 거라는 확신 내지는 소망을 가진 적이 없어서 항상 혼자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굳게 믿어왔고, 지금까진 나름 자립해서 잘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나보다 훨씬 돈도 잘벌고 전망도 좋은 커리어 여성인 P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약간은 의아했고 그녀가 진심으로 C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결혼을 하고 싶어서 그를 지금까지 만나온 것인지 헷갈렸던게 사실이다. 며칠 뒤 P는 남자친구와 이런 고민에 대해 다시 얘기를 하고는 나에게 보고(?)를 해줬는데, 남자친구 C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넌 내가 얼마를 버는지를 생각해선 안돼. 내가 있건 없건 너 혼자서도 은퇴할 때 충분할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어. 그러니 돈 걱정을 그렇게 할 필요는 없을거야.”

이건 완전히 내가 한 말이랑 똑같은데? 했더니 P가 우리 둘이 천생연분일지도 모르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