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어떤 남자가 좋아? 라고 물을 때 마다 항상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나의 답은  ‘말이 잘 통하는 남자’ 였다. 그건 나 뿐만이 아니라 적어도 내 주위의 많은 여자분들의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그런데 ‘말이 잘 통한다’라는 것만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조건도 없을 것이다.  ‘필이 통하는 사람’에 버금가면 버금가는 조건이랄까.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봤다. ‘나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좋아’라고 말할 때, 단지 말을 잘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인지. ‘말이 잘 통한다’라는 것은 상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1. 공통된 관심사

즉 대화의 화제거리다. 아무리 말을 잘하는 사람이더라도 나와 공유할 수 있는 화제거리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래서 남녀간에 인기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래저래 아는 것이 많은 잡학다식형이 꽤 눈에 띄이는데, 아무래도 여러 방면에 아는 것이 많다보면 누구와도 얘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말주변이 없어도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 더 잘 통한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2. 말하는 스타일

두 사람의 대화 방식과 스타일이 하늘과 땅 차이라면 아무리 말을 잘하고 아는 것도 많고 공통된 관심사가 있어도 나와 말이 잘 통한다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은 말할 때 굉장히 냉소적인 유머를 자주 쓰는 반면, 그 상대방은 말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약간은 답답한 스타일이라면 두 사람간의 대화가 술술 이어지긴 힘들 것이 뻔하다. 내 눈엔 둘이 맨날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사실은 자기들만의 대화 방법인 커플들도 있다. 그 둘이 다른 상대를 만났더라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내가 세 번 데이트를 했던 한 대학교수는 첫인상도 좋고 외모고 평범한 별로 나무랄데 없는 남자였는데, 그와 세 번 만나고 안되겠다 종지부를 찍은 이유는 그와의 대화를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예를 들면 그의 전공분야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지라 ‘그게 뭐지요?’라고 물은 나에게 그는 30분에 걸쳐 심도깊은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내가 재미있게 듣는 줄 알았겠지. 하지만 왠만큼 예의있는 사람 같으면 그렇게 열심히 얘기하는데 하품하며 관심없는 표정을 지을 수는 없을거다. 문제는 그런 일이 한 두 번이면 괜찮은데 모든 대화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에 나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아.. 이 음악 내가 좋아하는 건데’ 라고 음악 쪽으로 얘기를 돌리면, ‘이 밴드는요 원래 밴드 xxx의 영향을 받았는데 두 번째 앨범에서 베이시스트가 바뀌면서 취향이 변했죠…’ 로 시작해 그 밴드에 대해 20분간 열의에 넘치는 설명을 해주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공학도적인 깊이 들고 파는 스타일이 대화방식에도 그대로 스며들어서 그런 것일까. 아뭏든 그런 대화 스타일을 가진 사람과의 데이트는 강의를 듣는 것보다 지루했다.

3. 주고 받기

모든 대화를 ‘나’를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과 얘기를 하다보면 도대체 이 사람은 나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반면 자기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질문공세를 펼치는 사람도 있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는 자기 속내도 털어놓으면서 대화에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사람이다. 나에 대해 풀어놓는 만큼 상대방도 그만큼 풀어놓을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다는 뜻이다. 연애에서 밀고 당기기가 중요하다는 말처럼 대화를 즐겁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도 밀고 당기기가 필요한 법이다.

4. 비슷한 취향, 가치관

어떻게 보면 누군가와 말이 잘 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 사람과 비슷한 취향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어떤 주제에 대해 얘기를 해도 두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얘기하면서 ‘맞아, 맞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이 사람과는 말이 잘 통한다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결국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좋다’라고 말은 이런 복합적인 조건들을 다 포함할 수 있는 무지 까다로운 조건이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