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ou’re reading...

사는 이야기

동거 후의 변화

S와 같이 살기 시작한지 한 달이 넘어갔다.  누군가와 같이 살아본 경험이라고는 미국 오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산 경험 – 이것도 동거의 경험에 속할지는 의문이지만 – 외엔 전무한 나에게 S는 충고했었다.  10여년을 혼자 살던 나에게 동거는 큰 변화이자 충격일지도 모른다고. 심지어 S의 어머니도 은근 걱정하셨단다.  내가 같이 사는 것에 적응을 잘 할지를 말이다.

고작 한 달 만의 경험을 가지고 뭐라 하긴 이를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다지 큰 변화를 느끼진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일상 생활에 작은 변화들이 생긴 것은 확실한데 그 중 몇 가지를 적어보면…

1. 먹는 일

혼자 살 적엔 끼니때마다 제대로 밥을 해먹는 일이 참 드물었다. 워낙 아무걸로나 배를 채우면 된다 주의였고, 혼자 먹기 위해 요리하는데 시간을 쓰느니 요리 안할 수 있는 것들을 먹고 남은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편이었다.

같이 살기 시작한 뒤로 아무래도 저녁을 같이 먹게 되고 주말엔 거의 밥을 같이 먹게 되다보니 요리하는 횟수도 늘었고 – 그래도 아직은 S가 나보다 요리를 더 많이 한다 – 식단도 달라졌다.  서로 각자 좋아하는 것을 따로 만들어 먹을 때도 있지만,  하루는 내가 먹고 싶은 것,  다음 날은 S가 먹고 싶은 것, 이런 식으로 서로에게 조금은 맞춰가고 있다.

2. 자는 일

직장인이라 혼자 살 때도 주중에 늦게 까지 깨어있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가끔은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티비를 보며 새벽 1-2시까지 멀뚱 멀뚱 할 때도 있었다.  요즘은 거의 11시면 잠자리에 든다.  둘 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이라 10시 반이 되면 같이 잘 준비를 하고 늦어도 11시엔 침대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라면 매일 밤 옆에서 내 손을 꼭 잡아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  그 느낌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푸근하다.

3. 섹스

친한 친구 하나가 여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한 지 2주일쯤 되었을 때 나에게 말했다.

“우리, 같이 살기 시작한 뒤로 섹스를 한 번도 안했어.”

그게 놀라웠던 이유는 그 커플은 연애하면서 주말마다 4-5시간씩 섹스를 했던 커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S와 나도 예전엔 주말마다 섹스를 하고 일주일에 최소한 세 번 정도는 섹스를 했었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로 그 횟수가 줄어든 것이다.

같이 살면 이 사람과 항상 섹스를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은연 중에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섹스에 대한 생각이 적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젠 이 사람과 연애를 한다라기 보다는 함께 생활을 한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게 되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루는 퇴근시간 무렵에 S가 전화를 했다.

S: 집에 몇시쯤 올거 같아?

나:  음.. 퇴근하고 운동하려고. 그럼 7시 반이나 8시 쯤 될거 같은데.

S: 어…  혹시 오늘 생각있어? ( Are you in moon? )   만약 별로 하고 싶지 않으면 나 혼자 해결하려구… (I will take care of myself..)

나: 흠… 운동하고 나면 피곤할 거 같은데… 그냥 혼자 해결해.  (Why don’t we take care of yourself?)

S: Ok. Welcome to the marriage life!

이런 대화를 가끔씩 하고 산다.

물론 아직도 일주일에 한 두 번 섹스 할 때면 화끈하고 재밌지만, 연애 초기의 섹스라이프와 결혼 후의 섹스라이프는 달라질 수 밖에 없음을 슬슬 인정하고 있다.

4. 화장실 물 내리기

혼자 살 던 때, 소변을 보고 나면

- 물을 내린다.

요즘, 소변을 보고 나면

-  S에게 물어 본다.  “지금 오줌 눌거야?”

답변이 Yes면 물 안내리고, No면 물을 내린다.

——

30년 이상, 다른 방식으로 생활해 온 두 사람이 같이 산다는 것이 쉽다라고 할 수만은 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생각보다 수월하다.  우리 둘 다 크게 모나지 않고 S가 많이 양보해주어서 그렇기도 하고, 둘 다 어지르기 보다는 치우는 편이고, 여러가지로 공통점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같이 살면서 더 절실히 느끼는 점은 서로에게 각자만의 시간을 할애해 주어야 한다는 것.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모든 것을 함께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똑같이 좋아할 수도 없고.  가끔은 서로 하고 싶은 것을 각자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정신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같이 살더라도 연애할 때의 애틋한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Discussion

9 Responses to “동거 후의 변화”

  1. ‘하지만 가장 큰 변화라면 매일 밤 옆에서 내 손을 꼭 잡아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 그 느낌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푸근하다.’

    이 부분 읽고있으니 제 마음까지 포근해지는기분이에요~
    늘 행복하세요. :)

    Posted by 도둑괭 | 26. Aug, 2010, 3:01 pm
  2. 솔직녀님의 정말 솔직한 이야기를 읽노라면
    참 많은 것들을 배워가게 됩니다…
    막연히 생각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과
    정말 함께 사는 것은 이런 차이가 있겠구나 싶어지네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계시는 생활, 넘 부럽습니다… +_+

    Posted by 라라윈 | 26. Aug, 2010, 5:36 pm
    • @라라윈: 저는 라라윈님 글 읽을때마다 언제 이런 생각을 해서 조목조목 잘 정리해 쓰실 수 있는지 감탄한답니다.

      @스무살 사랑: 화난채로 잠자리에 드는건 정말 피해야죠. 잘 하고 계시네요. ㅎㅎ

      Posted by 솔직녀 | 27. Aug, 2010, 9:07 am
  3. 저도 남친이랑 거의 동거를 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5일은 저랑 같이 살다시피 하거든요).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내다 느끼는 점이 있는데 :
    1.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함. 한시간 정도는 각자만의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한것 같아요.
    2. 잠자는 버릇: 저는 새벽에 자고, 남친은 회사인이라서 일찍 자거든요. 늘 제가 새벽에 깨우기 때문에, 저는 침대에 눕는 시늉만 하고, 남친이 잠들면 슬그머니 다른 방으로 가서 잠자게 되었어요. 물론 남친이 같이 안잔다고 불평을 하지만요.
    3. 섹스… 맨처음엔 매일 했지만.. 요즘은 제가 해달라고 보채면 하게되요. ㅋㅋㅋ 뭐. 일주일에 두세번?
    님께서 말씀하신것 처럼.. 잠잘때 손 잡아주는 사람이 있는게 참 보람된것 같아요. 비록 티격태격 싸우고, 화 풀어주기를 매일 하는 우리지만.. “we never go to bed angry” ^^

    Posted by 스물살 사랑 | 27. Aug, 2010, 5:37 am
  4. 세세한 라이프를 포스팅 해 주셨네요~!
    동거를 해 본적은 없지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습니다~

    Posted by G-Kyu | 04. Sep, 2010, 9:57 am
  5. ㅋㅋ 소변 후 물 내리는 것에 변화 .. 읽고 한참 웃었네요..

    Posted by sky | 07. Sep, 2010, 9:28 pm
  6. 도움이 되는글이 많이 있어서 좋아요^^
    언니는 relationship의 선배같아요!

    Posted by DK | 21. Sep, 2010, 9:52 pm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