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의 옆집에 살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몇 년 전에 폐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으신 뒤로는 휠체어를 타고 생활을 해오셨는데, 결국 우리가 한국에 있던 사이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는 얼굴을 뵌 적도 없고 그 분에 대해 아는 바도 별로 없지만, 그 분의 아내와는 몇 번 인사한 적도 있고 해서 그 소식이 씁쓸하게 들렸다. 볼 때 마다 곱게 늙는다는게 저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 할머니, 로이스는 S와 나를 남편의 추모 파티에 초대했다.

영어로는 Memorial Brunch라고 하는데, 장례식과는 별도로 장례식 한참 뒤에 친지들이 모여 죽은 분에 대한 추억거리들을 서로 나누며 밥먹고 술마시고 하면서 다시 한 번 돌아가신 분을 그리는 자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자리는 물론 흔하지 않고 나도 생전 처음 초대받아 갔기 때문에 도대체 어떤 분위기일지 궁금했다.

참석한 분들이 하나씩 단상에 나가 고인에 대한 얘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얘기를 들으면서 고인에 대해 알게 된 사실들은, 그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건축가였다는 것, 그와 로이스 둘다 한번씩 이혼한 경험이 있고 이전 결혼에서 두 명씩의 자녀를 두었다는 것, 신선한 재료로 만든 요리와 와인을 즐겨했고 열렬한 재즈 애호가였다는 것, 등등..

그 중에서 가장 의외였던 것은 34년의 세월을 함께 한 그들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들이 부부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로이스의 딸이 고인에 대해 이렇게 얘길하는 것이다.

“그 분은 저에게 처음엔 엄마의 남자친구였죠. 그러다가 엄마의 연인으로, 그리곤 엄마의 둘도 없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너무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엄마를 누구보다 사랑해주었고, 저에겐 양부 이상의 존재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주었어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란 결혼으로 묶여지는 사이가 아니라 친구같이, 연인같이, 진실로 인생을 함께 즐기고 함께 힘들어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이야 말로 내가 동경하는 사랑을 몸소 보여준 커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내 눈가가 촉촉한 것을 보고는 S가 왜 울었느냐고 물었다.
나: “어.. 난 두 분이 결혼한 줄 알았는데.. 34년을 그렇게 같이 행복하게 살았다니, 참 아름답다..”
S: “우리도 결혼하지 않고 그렇게 살 수 있어. 그럴까? 😉 ”
나: “흠.. 울 엄마 아빠 때문에 안돼. ”

그 날 나는 내가 혹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정작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들을 잠시라도 소홀히 했던 건 아닌지 문득 돌이켜보게 되었다. 결혼에 연연하면서 정작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결혼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고 받지는 않았는지, 결혼은 인생을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단계일 뿐이지 그것이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는 것을 잠시라도 잊은 적이 있었는지.

비록 살아선 얘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나도 돌아가신 그 분께 감사드리고 싶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 주셔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