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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프로포즈가 그렇게 중요할까?

한국을 떠나기 이틀 전, 우리 가족과 나와 S, 그리고 그의 미국인 친구 한 명, 이렇게 다 같이 개고기를 먹으러 갔다. 밥과 술을 거하게 먹고 난 뒤 S는 넌지시 나에게 말했다. “너희 부모님께 내가 하는 말을 통역해 줘. ” 물론 나는 이미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지 알고 있었다.  S가 영어로 부모님께 하려던 말을 하는 동안 나는 부모님이 그가 하는 말을 어느 정도나 알아듣고 계신지 슬쩍슬쩍 부모님의 얼굴을 살폈다. 알아들으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S의 말이 끝나고 나는 어색하게 그가 한 말을 전달했다.

“어.. 얘가 나를 많이 사랑하고 그래서 나랑 결혼하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허락해 주셨으면 한대.”

부모님의 그에 대한 답변은 “Of Course!”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하셨다. 땀을 찔찔 흘리면서 “결혼을 허락해 주십시오” 했던 S는 부모님의 썰렁하다면 썰렁한 반응에 약간 실망한 눈치였다. 곁에서 열심히 비디오를 찍고 있던 S의 친구도 한마디 거들었다.

“너의 부모님이 지금 이 상황의 중요성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 아마도 문화적인 차이 때문인 것 같은데, 미국에선 남자가 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 정식으로 결혼 승락을 받는게 굉장히 중요하고 긴장되는 순간이라고 설명해 드려.”

그 설명을 들은 내 부모님은 깔깔 웃으시면서 “우린 이미 너희 둘이 결혼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얘가 왜 새삼스럽게 이러나 했다”고 하시며 S에게 건배를 권하셨다.

그로써 우리는 약혼한 사이가 되었다.

미국에 돌아와서 슬슬 언제쯤 결혼식을 올릴지, 어디서 피로연을 할 지 알아보기 시작했고, 지난 주에 드디어 결혼식장과 피로연장을 예약했다. 그리곤 가까운 친구들에게 결혼 소식을 알렸다.

“우리 내년 *월에 결혼하기로 했어.”
“오오.. 축하해~ 프로포즈 받았어?”
“프로포즈? 그냥 둘이 결혼하기로 결정한거지.”
“어머.. 그래도 프로포즈를 받아야지.”
“프로포즈가 뭐 중요해? 난 별로 신경 안 써.”
“그럼 반지는 받았어?”
“약혼반지는 생략했어.”
“뭐야.. 반지는 꼭 받아야지.”
“글쎄. 난 반지도 별로 필요없는데.. 반지 살 돈으로 새 부엌 해달라고 했어.”
“부엌이랑 반지랑은 다르지.”
“다르다면 다르지만, 반지사고 부엌 고치고 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그래서 스트레스 받게 하느니 안 받는게 나. 그리고 난 솔직히 반지 끼는 것도 귀찮아서..”

그 뒤 또 다른 친구에게 결혼 소식을 전했을 때, 그녀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프로포즈를 받아야징~~~”
“왜? 결혼하기로 하면 된거지.”
“그래도…”

재밌는 사실은 친구들 중 대체로 이런 반응을 보인 친구들은 다 미혼이라는 점. 결혼한 친구들은 프로포즈나 반지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축하해~ 드디어 하는구나.” “언제 어디서 할거니?” 뭐 대충 이런 반응들이었다. 싱글녀들의 프로포즈와 반지에 대한 지나친 환상 때문에 혹시 그녀들이 아직 미혼인 건 아닐까? 많은 여자들이 프로포즈와 약혼반지를 꿈꾸는데 그게 정말 그렇게 중요할까? 많은 여성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왜 중요하냐고 물으면 딱 부러지는 대답을 준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것도 개인의 취향 문제일 뿐이다. 프로포즈나 반지가 어떤 사람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결혼의 결정 요인일 수도 있을테고, 나같은 사람에겐 그저 형식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왜 프로포즈나 반지가 중요한가만큼 왜 그것들이 나에겐 큰 의미가 없는지를 설명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냥 그럴 뿐이다.

그렇다고 나에게 프로포즈에 대한 낭만이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거다. 만약에 프로포즈를 받는다면? 음.. 아마도 영화 <스텝맘>의 이 장면이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프로포즈가 아닐까 싶다.

S도 뭔가 에드 해리스의 대사와 비스무레한 말을 나에게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에 무지 감동받았던 기억이… 그럼 그게 제 딴엔 프로포즈라고 한거였나?

Discussion

12 Responses to “프로포즈가 그렇게 중요할까?”

  1. 으악 부러워요~~
    부럽 부럽 ………
    악. 부러우면 지는거다. ㅠㅠㅠ

    으악…..

    Posted by 20. | 25. May, 2010, 10:22 am
  2. 안녕하세요.

    얼마전에 메일로 고민 상담드렸었는데, 연락이 없으시네요 ^^:
    혹시 제가 메일을 잘못 보낸건지요 ?
    koreangirltalk@gmail.com

    혹여 이 글을 보실까해서 여기다 연락드려요 ~ ^^

    Posted by sky | 25. May, 2010, 6:27 pm
    • @20.: ^^;

      @sky: 이메일 잘 받았습니다. 여유있게 답장을 쓸 시간이 좀 없어서 미루고 있었어요. 빠른 시일내에 답장해 드릴께요~~

      Posted by 솔직녀 | 25. May, 2010, 9:01 pm
  3. 축하드려요 :)

    여담이지만 제 예전 남자친구도 이니셜이 S 여서,
    항상 포스팅 읽을 때마다 괜히 반갑고 친근하고 그러네요. 하하하.

    암튼 축하축하!

    Posted by elle | 25. May, 2010, 10:36 pm
  4. 정말 축하드려요! 솔직녀님의 글을 계속 읽어 와서 인지
    아는 언니가 결혼하는 느낌이에요 :)
    이제까지처럼 계속 행복하시기를 바랄게요!

    스텝맘 프러포즈는 완전 감동인데요? *-*
    남자분들은 보고 부담스럽겠지만 ㅋㅋ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Posted by Y | 25. May, 2010, 11:33 pm
  5. 진심으로 축하해요! 남친분께서 솔직녀님을 많이 사랑하시네요.
    프로포즈는 두사람의 결정이고, 하나의 “계약”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함께 살아갈 결정을 내릴려면, Practical 할수록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 다이아 보다 새 부엌을 선택한 님이 옳은것 같아요. ^^ 남친이 한국까지 가서, 어려운 문화의 벽을 뛰어 넘어서 부모님앞에서 그렇게 용기내서 허락을 물어본게 어느 다이아 반지, 아니면 “프로포즈” 이벤트 보다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것 같아요.
    제 남친도 이미 프로포즈 했는데, 말로 했어요 ㅋㅋ, 아직 우리 둘다 돈이 없고 어려서 약속뿐이고, 반지도 없지만, 양쪽 집안이 우리 관계를 인정해줬고, 아직 행복하게 연애하고 있어서, 나중에 동거하게 결정할때가 기대되네요 ^^

    Posted by Jane | 28. May, 2010, 8:18 am
    • @Jane: 감사합니다. Jane님의 말을 듣고 보니 제 남친이 저를 따라 한국을 왔던 것이 더 값지게 느껴지네요. ㅎㅎ 사실 그 여행에서 이 사람이 나를 정말로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더 느꼈죠. 그래서 결혼도 쉽게 결심한거구요. Jane님도 남자친구와 행복한 시간 많이 많이 갖도록 하세요~

      @J: 말씀대로 미국에선 이혼이 남자에게 무지 큰 손해죠. 사실 제 남친도 이혼남이라 그 아픔을 잘 알기 때문에 저와의 결혼에 대해서는 더 신중하려고 하더군요. 댓글 감사합니다!

      Posted by 솔직녀 | 30. May, 2010, 12:51 pm
  6. 축하드려요! 자주 와서 보고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사회학 시간에 배운건데, 외국에서 프로포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미국은 결혼하고 이혼할 경우 남자가 대부분 위자료로 빚까지 질정도로 생활이 위태위태 해져서 프로포즈라는 것은 “내가 이러한 재정적 부담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며, 이러한 경우 내가 너의 모든것을 책임지겠다.” 라고 하는 일종의 서약입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남들이 약혼하는것 을 봤을때 다들 한남자가 여자를 책임지겠다고 하는것을 축하 해주는 것이며 외국 여자분들이 뛰면서 자랑 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그리고 동거를 통해 여자들이 프로포즈를 기다리는 이유 또한 남자가 자신을 책임지겠다는 그러한 약속이 없기땜에 기다리는 것이구요.

    한국은 그에비해 이혼하면 위자료 적당히 주고 재정적 부담이 빚낼정도로까지 없기때문에 다들 프로포즈를 중요한 의식으로 보지 않는 거 같습니다.

    진심으로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Posted by J | 30. May, 2010, 12:33 pm
  7. 와~ 정말 축하드려요!! ^-^
    저도 언젠가 저런 날이 오겠죠?! ㅜㅜㅋㅋ

    Posted by yomi | 31. May, 2010, 10:0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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