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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내가 부러워하는 한 친구 이야기

어젠 친구 L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우선은 나와 S의 한국여행에 대해, 그리곤 그녀의 중국, 타이, 캄보디아 여행에 대해 서로 수다를 떨었다. 그리곤 서로의 일 얘기, 그녀가 구상하고 있다는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녀의 남자친구 J는 잘 있는지 물어봤다.

“J? 우리 헤어졌어.”

헤어졌다는데 왜 헤어졌냐고 묻는 것만큼 허무한 질문은 없다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호기심에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헤어졌어?”

일단 여기서 L과 J의 프로필에 대해 말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들은 내가 평소에 무지 부러워하던 커플이었기 때문이다. L의 프로필을 말하자면;
성별: 여성
출신국: 중국
나이: 40
직업: 사업가. LA에 아트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으면서 이런저런 다른 일들도 함.
결혼여부: 20대초반에 결혼해서 아들하나를 낳고 이혼. 10여년 싱글 생활.

J로 말하자면,
성별: 남성
출신국: 미국
나이: 46
직업: CEO. 몇 개 회사를 거치면서 돈을 꽤 벌었음.
결혼여부: 이혼 한 번. 전 결혼에서 낳은 아들과 딸이 있음.

둘다 커리어면에서 안정적이고, 돈도 벌만큼 벌어 해외여행도 숱하게 다니고, 자식들도 웬만큼 커서 크게 걱정할 필요없고, 외모도 둘다 출중한 편이고, 뭐하나 빠질 것이 없는 커플이어서 S와 나는 항상 그들을 은연중에 부러워했었다. 그런데 그 커플이 깨졌다니 궁금할 수 밖에.

L은 그와 헤어진 이유를 얘기하면서 그가 너무 needy하고 clingy한 것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needy와 clingy는 흔히 남자들이 최악의 여자친구 타입을 얘기할 때 쓰는 형용사인데, 우리말로 하자면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이 많고 의존적”이고 “달라붙고 집착이 심한” 정도가 될까? 보통은 남자들이 그런 여자를 견디지 못해 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L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니 더욱 흥미로왔다. 게다가 상대는 40대 중반에 갖출 것 다 갖춘 성공남이니 말이다.

설마 이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L은 무지 사교적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기는, 소위 사교계의 꽃이길 원하는 여자다. 나는 적어도 내가 J를 몇 번 만났을 때 받은 인상으로는 그도 그런 남자인 줄 알았다. 일단 몇 개 회사의 CEO를 거친 남자라면 그런 자리를 즐기지 않고는 버티지 못할테니 말이다. 그런데 L의 얘기를 듣고 보니 둘의 스타일은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L은 인정했다. 연애 초기엔 그가 자기에게만 관심을 쏟고 자기와만 시간을 보내길 원하고 둘이 있으면서 자기를 여왕처럼 대접해주는 것이 좋았다고. 하지만 1년, 2년이 지나면서 자기는 다른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일에도 좀더 시간을 쏟고 싶어졌는데, 자기가 다른 일에 시간을 보낼 때마다 그는 투덜거렸다는 것이다. 그녀가 친구들과 만나고 있으면 “나만 혼자 남겨두고 친구들 만나면 좋아?” 이런 식으로 전화를 한시간마다 하질 않나, 그녀가 해외여행 중에 전화를 매일 매일 하지 않으면 삐지질 않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런 남자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믿기질 않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다른 여자라면 그를 세상에도 없는 로맨틱남, 순정남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L은 내가 보기에도 존경스러울 정도로 독립적이고 좋고 싫고가 확실하고 매력적인 여자라 S의 말을 빌자면 ‘웬만한 남자가 감당하기 힘들어 보이는’ 여자다. 그런 그녀였기에 J가 더욱 그녀에게 매달렸을 수도 있고 더욱 정성을 다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그날 L과 술 한 잔을 곁들이며 우리는 이런 얘기를 나누었다.

연애를 하건 결혼을 하건, 두 사람이 인생을 100프로 공유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각자의 시간이 필요함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이 없이도 할 수 있는 정신적, 물리적 독립이 불가능하다면 그 인생을 나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Discussion

6 Responses to “내가 부러워하는 한 친구 이야기”

  1.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 만나는 거라고 서정윤시인의 시가 생각납니다. 모든 걸 공유할 수 없다는것.

    Posted by NeaNea | 22. May, 2010, 4:07 pm
  2. 제가 딱 그 J씨의 모습이네요 ㅠ
    제가 제남친한테 정말 needy하고 clingy한 여친이 아닌가싶어요.
    윗분 말처럼 홀로선 둘이 만나는거다. 라는 구절듣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없이 살수 없다면 그건 제대로 살아가는게 아니겠죠.
    하…… 정말 연애는 힘든것입니다 ㅠ.ㅠ

    Posted by 20. | 23. May, 2010, 10:46 am
    • @20.: 연애가 힘든만큼 연애하면서 많이 배우는거죠. 누굴만나 사귀든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적당한 것이 언제나 좋지요. ㅎㅎ

      Posted by 솔직녀 | 24. May, 2010, 9:59 pm
  3. 저한테도 needy and clingy 한 남자는 매력이 감소해요. 남자든 여자든, 자신감이 없고 자립심이 없고 남한테 의존하면, 친구로도 싫은것 같아요. 워낙에 인생살이가 복잡하고 험한길이 많을 텐데, 서로를 응원하는 equal partner가 필요하죠..

    Posted by Jane | 28. May, 2010, 8:23 am
    • @Jane: 댓글 감사합니다. 진정한 ‘파트너’가 되려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너무 의존적이면 안된다는 건 정말 맞는 말씀이예요. 자주 댓글 남겨주세요~

      Posted by 솔직녀 | 30. May, 2010, 12:5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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