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결혼식 참석을 위해 한국에 갈 날이 한 달 남았다. S는 이번 여행이 첫 한국행인데다가 결혼식까지 참석하게 되어 무척 들떠있다. 어제도 저녁을 같이 먹은 친구 부부에게 한국여행에 대한 기대, 총 20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여행에 대한 걱정, 장거리 비행에서 내리자마자 우리 부모님을 만나 이쁘게 보여야한다는 부담감 등등에 대해 노가리를 깠다. 친구 부부는 브라질 남자와 미국 여자 커플인데, 한국의 결혼식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한국 결혼식엔 들러리가 있니?
결혼식은 어떤 순서로 진행이 되니?
피로연 음식은 주로 어떤 음식이니?
결혼식은 어디서 열리니? 다들 교회에서 하니?
등등등…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면서 한국의 결혼식이 미국이나 다른 서양나라들의 결혼식과는 참 많이 다르구나 새삼 느꼈다. 한국에선 결혼식만 갔다오면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가도 사라지는 나였는데 미국에 사는 동안 6번의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미국식으로 결혼식을 하면 할만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결혼식을 갈 때마다 이렇게 결혼식을 할거면 왜 하는지 이해가 잘 안됐다. 결혼식 자체엔 별 관심도 없는 듯, 식이 끝나기도 전에 밥먹으로 몰려가서는 밥먹자마자 후다닥 사라지는 하객들이 일반적이고, 하객들 중 절반은 신랑 신부와 직접 아는 사람들도 아니고, 심한 경우 돗대기 시장 같은 분위기는 정말이지 아니다 싶었다. 웨딩드레스 입고 사진찍고 나면 다인듯한 결혼식, 차라리 생략하고 그 돈으로 신혼여행을 거하게 가는 것이 낫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랬던 내가 미국 결혼식에 초대받아 다녀보면서 결혼식 기피증은 완전히 사라지고 오히려 결혼식 가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그 이유는?

1. 미국 결혼식은 초대받은 사람들만 갈 수 있다.
한국의 청첩장은 초대장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결혼 안내통지서 같은 역할을 하는 반면, 미국의 결혼 초대장은 그야말로 초대장이다. 일단 보내는 대상 선정부터 다르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회사 사람들에게까지 뿌려지는 한국의 청첩장과 달리 미국 결혼식의 초대장은 신랑신부가 신중하게 고른 사람들에게만 보내진다. 그래서 결혼식 초대를 받는 것은 일종의 영광인 셈이다.

초대를 받은 사람은 정해진 날까지 참석여부를 반드시 알려주어야 한다. 그 이유는 미국 결혼식에선 참석하는 하객들의 숫자에 맞춰 음식과 술이 준비되고 그에 따라 지출내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보통 결혼식 초대장은 받은 사람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참석을 미리 계획할 수 있도록 결혼식 두 어달 전에 보내진다.

2. 결혼식보다 피로연 위주다.
이렇게 신중하게 선택되어 초대받은 하객들인지라 거의 대부분은 결혼식과 피로연 모두 참석한다. 피치못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피로연에만 참석하는 하객들은 자주 있는 반면, 결혼식만 참석하고 피로연에는 참석하지 않는 하객은 거의 못봤다. 그만큼 미국 결혼식은 피로연이 주가 된다. 결혼식 자체는 사실 한국보다 간단하고 종교 예식이 아니면 보통 30-40분만에 끝난다.

내가 참석했던 한 결혼식의 피로연장

결혼식 끝나면 우르르 가서 아는 사람들끼리 몰려 앉아 밥먹는 한국의 피로연과는 달리, 미국의 피로연은 그야말로 큰 파티다. 그래서 이브닝 드레스나 칵테일 드레스 (쉽게 말하면 꽤 노출이 되는 드레스)를 입는 여성 하객들도 흔하다. 신랑 신부가 파티장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하객들은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데, 내가 갔던 모든 피로연에선 술은 무한정 마실 수 있었다. (흐흐…)

하객들은 신랑 신부가 미리 정해놓은 좌석에 앉아야 한다. 보통은 가족 친지들 테이블, 친구들 테이블, 이런 식으로 뭔가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을 같은 테이블에 앉힌다. 역사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싱글인 친구나 친지들을 한 테이블에 모아 앉혀놓는 경우도 종종 봤다.

한 시간도 안되는 예식에 비해 피로연은 최소 4시간에서 길게는 8시간까지도 계속된다.

3. 남녀노소 어울어져 음악과 춤을 즐긴다.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 결혼식에 대해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결혼식 피로연에 춤이 없다고 하면 다들 눈을 땡그랗게 뜬다. 엥??

춤추는 걸 무지 싫어하는 내 친구는 미국에서 결혼식을 하면서 한국식으로 춤이 없는 피로연을 하기도 했지만, 99프로의 미국 피로연엔 디제이나 밴드가 등장하고 신랑 신부, 하객들이 다 같이 광란의 춤파티를 즐긴다. 춤을 좋아하는 나로선 당연히 결혼식에 초대받는 것이 기쁠 수 밖에.

피로연장의 댄스무대

특히 피로연은 신랑 신부에겐 결혼식 준비와 식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푸는 자리다. 얌전하고 다소곳한 모습만 보여주는 한국의 신부와는 달리 미국 신부들은 피로연에서 누구보다 떠들썩하고 춤도 제일 열심히 춘다. (물론 개개인의 성격에 따라 정도차이는 당연히 있지만..)

4. 하객에게 남는 장사다.
한국에서 참석했던 결혼식 중에 내가 낸 축의금의 값을 한 식사를 대접받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물론 축의금을 내면서 꼭 그만큼을 되돌려 받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손님들은 별로 없지만, 그런 이유로 한국 사람들에겐 청첩장을 받는 것이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다.

한국 결혼식이 혼인 당사자들에게 남는 장사라면, 내 경험으로 미국 결혼식은 하객에게 남는 장사다. 미국에선 많은 하객들이 축의금 대신 선물을 주는데, 보통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한 사람들에겐 신랑신부가 원하는 선물 목록과 원하는 가게 리스트가 보내진다. 그 리스트에서 골라 선물을 하면 된다. 부자들의 경우 하객들도 비슷한 레벨의 사람들이라면 선물 리스트도 꽤 비싼 품목들로 가득하겠지만, 중산층인 내 친구들이나 친척들의 선물 리스트는 30~100불 (3만원-10만원?) 정도의 품목들이 대부분이었다.

50-60불짜리 선물을 한다치자. 그리고 피로연에 가서 무한정 술을 마실 수 있고 괜찮은 디너 대접받고, 춤추고 놀고, 파트너도 동반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신랑 신부의 결혼식 참석자 명단에 남아 평생 그들의 추억 속에 자리할 수 있다는 점. 내 생각엔 50-60불이 아깝지 않은 하루다.


부모님 위주의 결혼식에서 벗어나 본인들 위주의 이벤트식 결혼식을 하는 한국의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한국의 결혼식은 어차피 서양식의 결혼식 문화가 들어와 한국화 된 것이라 어떤 식이 정식이고 표준인지 애매한 상태에 이르른 것 같다. 뭐, 두 사람이 좋은대로 하면 좋겠지만, 문제는 예식장이나 결혼이벤트 회사들이 ‘이거 아니면 안된다’식의 상술을 펼쳐 신랑 신부가 원하는대로의 결혼식이 무지 힘들어 보인다는 점이다.

내 동생의 결혼식은 어떤 식일지 궁금하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