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미 15일, 발렌타인 데이와 설날이 지난 월요일. 내가 있는 이곳은 발렌타인 데이 저녁이다. 올해는 S와 집에서 조촐하게 발렌타인을 보내기로 이미 정했고, S가 나를 위해 저녁을 해주겠다고 해서 나는 vegan 치즈케익을 만들기로 했다. Vegan 치즈케익은 우유로 만든 크림치즈 대신 콩으로 만든 크림치즈를 사용해서 만드는데, 우유의 락토스에 알러지가 있는 S를 위해 인터넷에서 찾은 레서피를 이용해서 처음 만들어봤다.
같이 아침에 장을 보고, 운동을 하고, 4시경부터 저녁준비에 들어갔다. 나의 케익은 한시간만에 다 되어 냉장고 안에 일찌감치 자리잡았고, S는 홍합요리와 일본식 튀김을 만들기 시작했다.
“뭐 도와줄거 없어?”
“없어. 오늘은 발렌타인이니까 내가 요리한다고 했잖어. 앉아서 와인이나 마시고 계셔.”
그래서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와인을 홀짝 홀짝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누가 요리하는데 가만히 앉아있는게 습관이 안돼서 자꾸 부엌을 기웃기웃거릴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처음으로 만드는 요리를 하는 S가 혹시 뭐라도 빼먹지 않나 걱정이 된것도 사실이고.
나: (레서피를 읽어보다가) 반죽에 얼음물 썼어?
S: 응. 수돗물 썼는데, 디게 차가워.
나: 수돗물은 얼음물이 아니잖어.. 🙁 진짜 얼음물을 써야 되는데.
S: 괜찮어… 여기서 뭐해? 빨리 부엌에서 나가~~ ”
(20분 후)
S: 홍합요리 다 됐다~~
나: 오호… 🙂 (부엌으로 조르륵..) 근데 왜 빵가루가 그대로야? 요리가 다 안된거 같어.
S: 내 눈엔 다된거 같은데..
나: (레서피를 읽어보고) 올리브 오일 뿌렸어?
S: 아니..
나: 올리브 오일을 뿌려야 빵가루가 구워질거 같은데..
S: 알았어.. (오일 스프레이를 쏴악 뿌리고 있음)
나: (봉지에 그대로 싸여있는 베이질을 보구) 베이질은 언제 넣는거야?
S: …. 인제 넣지 뭐. (빼먹은 베이질과 마늘을 같이 다된 요리에 뿌리고 있음)
나: 차라리 안볼래…
부엌에 들어갈 때 마다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것 같아 아예 그 쪽으론 신경을 끄고 테이블 세팅을 했다. 드디어 저녁이 완성!! 둘다 배가 고플만큼 고픈 상태라 기름진 튀김을 보니 참기 힘들었지만, 포크를 드는 나를 보고 S왈, “잠깐, 먹기전에 키스를 해야지. (쪼옥) Happy Valentine’s!”
음식은 보기보단 맛있었지만, 내가 만들었다면 더 맛있게 만들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언급은 전혀 하지 않고, “오오.. 오징어가 넘 맛있어..” 하면서 야금야금 다 먹어치웠다. 요리란게 뭐 별건가,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지 뭐. 30분만에 다 먹어치울 요리를 하느라 두 시간 이상을 부엌에서 보낸 S가 고맙기만 했다.
결혼한 후배와 남편의 가사분담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녀의 남편이 설겆이나 요리나 뭐든 도와주려고는 하는데 해 놓은 것을 보면 영 맘에 안들어서 자기가 하는게 낫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자기가 해놓은 설겆이 다시하고, 그러다보니 남편은 점점 설겆이를 멀리 하게 되고.. 결론은 남편이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가사일을 돕지 않고 있다고. S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문득 그녀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래.. 남자의 정성이 중요한거지. 그리고 잘한다 잘한다 해줘야 더 해주고 싶을거 아냐. 그래서 S에게 저녁 내내 ‘요리해줘서 정말 고마워~~’ 를 연발했다… (앞으로 요리 더 많이 해달라는거지..)
어디선가 들었는데 남자에게 있어 중요한건 ‘인정’을 받는거라고. 사랑하는 여자로부터 ‘고마워’, ‘네가 최고야’라는 말을 듣는 것, 여자들이 볼 땐 아무것도 아닌듯 하지만 남자들을 무지 뿌듯하게 만든다고 한다. 비록 100프로 완벽하지 않고 어딘가 어설퍼도 백 번 고맙다고 말하기 전엔 다른 불평은 접어두자.
강아지 훈련시키는 것에 비하면 남자분들이 기분나빠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것과 별로 다를바 없다. 강아지가 내가 시키는 걸 할때마다 쓰다듬어주고 고기 한조각 주고, ‘자알 했어, 쫑~~’ 하는 것과, 내 남자가 나를 위해 뭔가를 해주었을 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주기를 원한다면, ‘자기 최고야, 너무 잘했어, 고마워’ 하면서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것.
흠… 크게 달라보이나?
October 15, 2014 at 1:15 am
남자는 교육하기 나름입니다!
솔직녀님 글이 너무 공감되서 자꾸 댓글 달게 되네요.^^;;;
가끔 남친이 요리 해 주는데요, 특히 어젠 넘 맛났답니다.
어제 남친이 만들어 준 파스타 사진 올리고 싶네요. 보기엔 그저그래 보이지만 넘 맛있었답니다.
“It was the most delicious pasta in the world.”라고 멘트 날려주고 말끔히 먹었더니 너무 좋아하데요.^^
칭찬해서 기분 나쁠 사람 없지요.
February 16, 2010 at 12:24 am
안녕하세요 답글은 처음입니다. ^^
“강아지 훈련시키는 것에 비하면 남자분들이 기분나빠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것과 별로 다를바 없다” 요 부분은 많이들 비슷하게 생각하시나봅니다. 예전에 BBC에서 남녀관계에 문제가 있는 여성분들을 모셔서 강아지 훈련에 참여하게 했더니 관계가 좋아졌더라 라는 내용의 프로그램이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남자이긴한데, 그래도 맞는말이라 생각되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는데 다시 글로 보니 묘한 기분인데요. ^^
February 16, 2010 at 9:16 am
두기님, 반갑습니다~~
정말 강아지 훈련이 효과가 있나보군요. 전 지금 남자친구 만나기 전까진 한번도 개를 키우거나 개 키우는 남자를 사귀어본적이 없는데, 남친이 개를 다루는 법을 알려주어서 배우는 중입니다. ^^; 거기서 배운걸 남친에게 다시 써먹는거죠.. ㅎㅎ
February 15, 2010 at 9:12 pm
안녕하세요 솔직녀님^^ 늦은감이 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음~ 오늘도 역시 공감가는 얘기들이군요~ 뭔가 자신이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걸
엄청 좋아라 하죠^^; 저도 예외는 아니더군요 ㅎㅎ; 그런게 역시 섹스에서도 반영되는듯합니다.
내 여자를 만족시킴과 동시에 나는 쓸모있는 사람이고 내 여자에게 인정받는걸 원하는거겠죠.
어설픈 맛도 좀 있어줘야지 나아지는 모습을 보는 쏠쏠함도 있는거겠죠~
저희 누님은 어머니에게 부탁할때 바짝엎드려서 부탁을 해야한다고합니다.
그래야 부탁을 들어주는사람도 즐겁다는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누님이 부탁할때는 안들어줄수가 없더군요^^;
February 15, 2010 at 11:24 pm
메모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섹스에 있어서야 말로 남자들이 더욱 인정받고 싶어하죠. 섹스할 때 제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제 남친이 어찌나 흐뭇해하는지.. ㅎㅎ 어찌보면 참 단순하다 싶기도 한데, 그게 남자들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February 15, 2010 at 1:32 pm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라던 광고문구가 생각나는데요~ ^^
남자가 잘 해줄때는 고마워하고 칭찬해줄 줄 아는 센스가
사랑을 키워주나봅니다. ^^
February 15, 2010 at 7:24 pm
고 최진실씨의 깜찍한 광고였죠.
칭찬받으면 기분좋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게 되는건 인지상정이니까요. 고맙다는 말은 너무 자주써도 나쁘지 않은 말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