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남동생이 올 봄에 결혼을 한다. 30대 중반의 싱글 아들 딸을 두고 노심초사 하시던 엄마 아빠로선 무엇보다 기쁜 일이 아닐수가. 다른 친구분들은 벌써 손주들을 보신지 오랜인데 우리 집은 이제서야 개혼이니 말이다.
남동생은 여자친구와 2년여의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한다. 이미 사귀는 동안에도 여러번 엄마 아빠와 다 같이 만난 적이 있고, 동생 여자친구의 부모님도 내 동생을 여러번 보시고 벌써 사위 대하시듯 갈 때 마다 반찬을 바리바리 싸주신다고 들었다. 어쨋거나 둘이 연애 잘하고 결혼하기로 결정한 뒤 부모님 상견례를 작년 가을에 했다.
그 자리에서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내 아들이지만 참 어디 내세우기 마음이 불안하고 조마조마하고 그렇습니다. 그저 이 놈 좋다는 여자가 있다면 누구라도 결혼시키려고 했는데, 다행히 xx가 제 아들을 좋다고 하니 정말 큰 짐을 더는 기분입니다.”
그리고는 동생 여자친구에게는
“결혼하면 이 놈은 니 책임이다. 얘가 속썩이면 니가 알아서 처리하지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라.”
라고 엄포를 놓으셨다나…
혼수와 예물에 대해 상의할 차례가 되고 신부쪽 부모님들은 은근 우리 부모님 눈치를 보셨다는데 (아무래도 아들 부모님이 아직도 주도권을 잡나보다..), 우리 엄마, 다시 단호하게 말씀하시길,
“저희는 예단 아무것도 필요없습니다. 두 분이 괜찮으시다면 예단이니 함이니 다 생략하고 혼수도 쟤네 둘이 필요한 것으로 골라 알아서 사도록 했으면 합니다.”
신부쪽 부모님들은 반신반의 하셨지만 일단 그 자리에선 양가가 아무것도 안하기로 합의를 하고 헤어지셨다. 그리곤 얼마 뒤, 동생 여자친구가 엄마께 전화를 했다.
“어머니.. 저희 어머니께서요 아무리 그래도 예단을 어떻게 아무 것도 안하냐고 하시네요. 주위 다른 분들도 다들 그러신데요. 예단 안 받겠다고 해도 그러는게 아니라고… ”
“얘, 내가 안받겠다고 하고 내가 괜찮다는데 다른 사람들이 왜들 그런다니? 어머니께 정말이지 걱정하지 마시라고 해라. 나중에 결혼한 뒤에 내가 혹시 마음 바뀌어서 뭐라고 할까봐 걱정하실지도 모르겠는데, 나 그런 사람 아니다.”
그래서 다시 예단은 물건너가게 됐다.
동생 신혼집은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전세로 얻었고, 동생 여자친구 부모님은 예단 없이 신혼 살림 장만만 도와주시기로 했단다. 그런데 보통 여자들이 결혼할 때 받는 함도 생략하기로 한지라, 우리 엄마는 쬐금 미안하셨나보다. 그래서 동생 여자친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내가 예물 안해주는 대신 너희 신혼살림 사는데 그 돈을 좀 보태줄테니, 필요한 살림살이 목록을 만들어서 보내봐라.”
양가에서 살림살이 살 돈을 보태주시고, 예단과 예물은 싹 생략하고, 결혼반지만 심플한 걸로 둘이 맞추고, 결혼식장 예약하고.. 이래저래 준비가 잘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주변에서 혼수, 예단, 함 때문에 티격태격하는 신랑 신부와 어머니들의 얘기를 흔하게 듣다가 내 동생의 결혼준비 과정을 보니, 왜 다들 이렇게 간단하게 하지 못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남들이 해야 된다고 하니까, 서로간에 부담만 되는 불필요한 물건에 돈써가면서, 심한 경우는 서로 감정까지 상해가면서, 무엇 때문에 그런 절차를 거치면서 결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입버릇처럼 ‘예단이니 함이니 다 무슨 필요가 있니’ 라고 말씀하시던 우리 엄마. 정말로 그 말을 실천하시는 엄마가 자랑스럽기만 하다.
October 18, 2010 at 2:50 pm
정말 멋지십니다…
살때는 비용이 많이 들고, 막상 결혼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닌
실속없는 혼수 예물에 허리가 휘기보다
정말 새출발하는 부부에게 필요한 목록을 채워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솔직녀님도 멋지신데, 어머님도 넘넘 멋지세요!
October 19, 2010 at 9:07 am
@라라윈: 감사합니다~ 저도 실속없는 혼수 예물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결혼할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ㅎㅎ
February 3, 2010 at 6:52 pm
저도 언젠가 엄마에게 물었었죠.
“우리 예단이나 부조금 이런 거 안하면 안될까?”
엄니 왈 “너 미쳤니? 그동안 받거나 뿌려놓은 게 얼만데…!!!”
저는 그냥 “네”하고 뒤돌아 섰습니다. ㅎㅎㅎ
우리 사정에서는 아직 힘든 결정이네요.
솔직녀님의 부모님의 용단에 박수를 보냅니다.
February 3, 2010 at 12:29 pm
안녕하세요! 제가 여자친구 보여주려고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라는 포스트를 찾는데 못찾겠네요ㅜ
전보다 이뻐지기는 했지만 글 찾는게 힘들어서 적응이 안되네요ㅜ
저 포스트 없을까요?
February 3, 2010 at 1:10 pm
@우왕: ‘다른 글 찾기’ 기능을 달았습니다. ^^;; ‘남자는 여자하기’ 라고 치고 버튼을 누르시면 원하는 글을 보실수 있을거예요.
February 3, 2010 at 4:08 am
워~ 어머님 대단하시네요^^
혹시 집에 딸 한분 더 없으신지 ㅎㅎ; 어머님보고 장가들어도 되겠네요 ㅎㅎ
February 3, 2010 at 12:10 am
자랑하실만 하시네요. 제가 그리던 이상적 결혼 시스템이 간소하게 반지만 교환하고, 결혼식도 소박한 곳에서(구청이든 시청이든 어디든), 그리고 집 장만 및 살림도 서로 힘 합쳐 였는데….남동생 분도 남동생 아내되실 분도 참 행복하게 결혼생활 시작하시는 것 같아요. 행운을 빕니다.
February 2, 2010 at 11:53 pm
굿!
February 2, 2010 at 11:49 pm
저도 생략할 거 다 생략하고 최대한! 간소하게 해서 한 결혼이고 솔직녀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해요! 하지만 저게 가능하려면 시어머님이 저렇게 말해주시는 것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ㅎㅎ 좋은 어머니셔요. ^^
February 4, 2010 at 9:01 am
@아롱이: 그렇죠.. 저도 엄마한테 그런얘기 했더니, ‘외국으로 시집가라..’ 하시더군요.. ㅎㅎ
@우오: ^^
@살롱고양이: 감사합니다. 저도 그런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이예요.
@메모: ㅎㅎ 아쉽게도 딸은 저뿐이네요..
@크눌프: 저희 부모님도 부조금은 받으실거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