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발렌타이 데이가 여성이 사랑을 표현하는 날로 굳어진 반면, 미국에서의 발렌타인 데이는 남여가 선물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지만 남자가 여자를 위해 무언가를 베푸는 날이라는 이미지가 훨씬 크다. 그래서인지 미국 남자들에겐 발렌타인 데이가 즐겁지만은 않은 날인듯 하다.

S가 언젠가 그랬다. “재작년 발렌타인 데이는 몇 년 만에 싱글로 보내게 된 발렌타인이었는데, 선물 살 필요가 없어서 너무 좋더라.” 농담반 진담반으로 들렸지만, 실제로 내 주위의 남자들은 발렌타인 데이를 여자친구 혹은 아내와 어떻게 보낼까 매년 이맘때가 되면 고민을 한다. 크리스마스가 가족명절이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실용적인 것들을 많이 주고 받는 반면, 발렌타인은 철저히 연인간, 부부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명절인지라, 많은 여성들이 은근히 로맨틱한 선물이나 이벤트를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니만큼 남자들에겐 머리가 좀 아픈 날이겠다.

미국에 온 뒤 내가 남자친구와 같이 보낸 발렌타인 데이는 두 번. 그런데 우연인지 두 번 다 남자를 사귄지 한 달 정도 만에 발렌타인을 맞이하게 됐다. 첫번째 발렌타인 데이는 그를 만난지도 얼마되지 않았을 때라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가 발렌타인 데이 전 날 물었다.

“내일 저녁 때 뭐하니?”
“별로.. 특별한 계획 없는데?”
“같이 저녁 먹을래? 그런데 레스토랑들은 보나마나 붐빌테니까 내가 요리를 할께.”

그래서 같이 장을 보고 우리 집에 와서 그가 요리를 했다. 파스타와 치킨 요리를 한 뒤의 내 부엌은 폭탄맞은 상태가 됐다. 요리를 잘하는 그는 아니었지만 땀 뻘뻘 흘리면서 두 시간을 (뭘 그리 오래 걸려 만들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잘 안됨) 요리를 해주는 남자에게 애정을 느끼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만난지 한 달만의 발렌타인 데이로서는 딱 적당한 낭만 – 요리 – 과 적당한 선물 – 초코렛, 장미 한 송이, 카드 – 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발렌타인 데이는 S를 만난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였다. 연애 경험자들로서 우리는 너무 로맨틱한 선물을 하는건 이 단계에서 오버다라는 데에 동의했다. 그래도 이미 공식적으로 사귀는 관계가 됐는데 선물없이 넘어가는건 아니다 싶어서 나는 카드와 그가 좋아하는 영화 Wall-E를 블루레이 디비디로 샀다. 그리고 브라우니를 구웠다. 그리고 그의 나를 위한 선물은…

기타 히어로 월드투어!!

내가 오락 Rock Band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와 비슷한 기타 히어로를 사온것이다. 그 날 저녁 우리는 팔목이 아플때까지 기타와 베이스를 쳐대면서 락앤록을 즐겼다.. 그리곤 그의 화끈한 서비스로 밤을 마무리했다.

일주일 전쯤, 그가 불쑥 물었다.
“발렌타인이 얼마 안남았어. 그 날 뭘하고 싶어?”
“음.. 글쎄.. 벌써? 아직 아무 생각도 안했는데…”
크리스마스와 내 생일이 지난지 얼마되지 않아 발렌타인 데이라.. 그래서 또 선물을 받는 것도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게다가 올 봄엔 한국에 같이 갈 계획이라 여행비도 많이 들테고..

나: “올해는 선물 서로 하지 않는게 어때? 대신 집에서 근사한 저녁 해먹고 뿅가는 섹스를 하는거야.”

그: “뿅가는 섹스..ㅎㅎ.. 는 꼭 집에서 하지 않아도 돼.”

나: “…그럼 어디서해?”

그: “어디서 못하겠어?라고 물었어야지. ㅋㅋ”

어디가 되든 나의 새 란제리를 입고 덜덜 떨지 않을 곳이기만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