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남자와 사귀는 한국여자에 대한 시선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것 같지 않다. 젊은 세대는 다를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한국에서 눈에 띄이는 서양남-한국녀 커플들이 눈꼴시게 행동을 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서양남자라면 무조건 사족을 못쓰는 몇몇 여자들 때문에 그런건지.

이 주제에 관한 대부분의 글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취향을 바탕으로 쓰여져있기 때문에 그런 글에 대고 ‘그건 아닌데요, 잘 몰라서 하시는 소린데…’라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왜 내가 미국인과 사귀게 되었는지를 써보고 싶어졌다.

내가 미국에 온 건 27살때다. 회사생활 4년 끝에 공부를 더 하고 싶고, 다른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미국유학을 왔다.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두 번 장기간의 연애를 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결혼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보수적인 집안 같았으면 결혼적령기의 딸이 유학간다고 하면 어떻게든 결혼을 시켜보내려고 하거나 안보내기도 했겠지만, 내 부모님들은 그런 면에선 상당히 개방적(?)이신 분들이어서 오히려 나의 새로운 츨발을 많이 격려해주셨다.

미국에 와서 첫 2년간은 공부하느라 정말 바빴다. 유학생활 중에 물론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다. 대부분은 나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들이고, 나랑 비슷한 나이거나 연장자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더라. 그렇게 2년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일을 시작하니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 외엔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어졌다. 그러면서 점점 미국사회에 적응이 되어갔다. 남들처럼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보는 한국사회의 분위기가 너무 싫었던 나에게 미국의 개인주의는 딱 맞았던거다. 그래서 일찌감치 미국에 눌러앉기로 결심했다.

나이가 30이 넘어가자 ‘한국 안들어가? 한국가서 결혼해야지’ 라고 하는 오지라퍼들도 생겨났지만, 결혼하러 한국에 들어간다는 발상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생각이었던지라 그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곤 했다. 하지만, 걱정이 전혀 안되었던건 아니다. 나라고 연애하고 사랑하고 결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나. 그래서 열심히 주변을 살펴봤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거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참… 남자가 없었다. 일단 나이에서 걸렸다. 내 또래나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들 중 싱글인 남자는 가물에 콩보다 드물었다. 간혹 싱글인 남자가 있어도 그들은 내가 나이가 많다고 거들떠도 안봤다. 간혹 나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는 남자는 내가 싫었다. 주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종교관이나 가치관이 너무 달랐다. 가다가 둘이 잘 맞는듯 하면 남자쪽 부모님이 xx도 출신이랑은 절대 결혼하면 안된다는 말을 해서 나가리가 나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에서 한국사람끼리 연애하는건 더 힘들 수 있는 것이, 한국인 사회가 너무 좁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남자건 여자건 어느 정도 확신이 있지 않고서는 쉽게 연애를 시작하지 않는듯 하다. 그러니 단순히 호감이 있다고 데이트를 청하기도 어색한 그런 분위기에서 흐지부지 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던 중, 같은 회사 동료의 친구인 미국남자를 알게 됐다. 두어번 파티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가 같이 연극을 보러가자고 해서 정식 데이트를 하게 됐다. 그와 만나면서 미국사람들의 데이트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되고, 영어에도 자신감이 붙고, 미국사람들과 얘기하는 것도 훨씬 자연스럽게 됐다. 그 뒤로는 ‘아, 미국 사람과도 사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엄마 아빠는 이 사실을 아시고는 가슴이 벌렁벌렁 하셨다고 한다. 그 친구와는 얼마되지 않아 그냥 친구사이가 됐지만, 두 분이 미국에 오셨을 때 그 친구가 저녁을 대접했다. 그 때 보시곤 부모님은 은근히 그냥 얘랑 잘 돼도 좋겠다라고 생각하셨다고 나중에 그러시더라. 그 이후론 우리 부모님도 내가 한국남자보다는 미국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편이 쉬울거라는데 이의가 없으셨다.

30대 싱글여성들이 나이 때문에 한국에서 짝을 찾기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한국에 있었으면 완전 노땅으로 아무도 관심 안 가져주는 퇴물 취급을 당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들이 눈이 높아서 그런거라고 비난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눈을 낮춰가면서까지 맘에 차지 않는 사람과 인생을 같이 하라는건 좀 심한 얘기 아닌가?

한국여성들이 외국인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마치 신분상승이라도 한 것 마냥 군다는 어떤 분의 말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그건 보는 사람이 그렇게 보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인 남자 여자 커플이 똑같은 행동을 하면 별일 아니고 그냥 재수없는 정도일 행동이 외국인 남자이기 때문에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여자분들을 실제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서도.

결론은 내가 미국인을 사귀게 된건 그가 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누구보다 나와 잘 맞아서라는 얘기였다. 같이 있으면 편하고 듬직하고, 나를 무엇보다 우선하고, 종교관, 가치관, 섹스관, 거의 모든 점이 다 이렇게 잘 맞는 상대는 처음 만난것 같다. 아이를 꼭 낳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점도 맞고, 부지런한 점도 비슷하고, 취미도 비슷하고… 내가 오래 전에 사랑했던 그 이후에 처음으로 내가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이고, 지금까지 만난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해주는 사람이니 말이다.

잘 맞는 상대를 찾긴 힘들죠..만났을 때 꽉 잡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