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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다이어트와 거식증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거식증 초기였다.

나는 한번도 뚱뚱하다고 보일 정도로 살이 쪘던 적이 없었다. 여자애들이 가장 살이 많이 찌는 시기인 고3 시절에도 내 몸무게는 45킬로 정도였다. 내 키가 159cm이니 그 정도 몸무게면 마르지도 찌지도 않은 정상 체중이었다.

대학교 1학년, 아무래도 늘어난 활동량 때문에 살이 조금 빠지는 듯 했다. 하지만 연일 회식과 술자리 때문에 몸무게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학년 여름방학때 미국에 한 달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1달간 무려 3-4킬로가 증가, 돌아온 나를 공항에서 본 엄마의 첫마디가 “어마, 너 살 쪘네”.

가을학기가 시작되면서 다시 몸무게를 원상복귀 시켜야겠다 다짐하고는 먹는 것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아침은 미숫가루 한 대접, 점심은 냉면이나 소면 같은 비교적 칼로리 낮은 음식, 아니면 가끔은 요플레 하나로 때울 때도 있고, 저녁은 거의 먹지 않던지 아니면 쬐그만 초코바 하나로 떼웠다. 그랬더니 몸무게가 45킬로로 금새 돌아왔다.

찌지 않았더라면 45킬로의 몸무게가 그다지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겠지만, 48킬로에서 45킬로가 되자 어찌나 가뿐하고 기분이 좋던지. 내친 김에 좀 더 빼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살이 빠져가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워서 다이어트를 중지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의 6개월을 그런 식으로 먹고 다니면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3개씩 뛰었다. 해가 바뀌면서 나의 몸무게는 41-42킬로에 도달했다. 맘껏 스웨터를 바지 속에 집어 넣고 입을 수 있는 내 몸매가 너무 좋았다.

대학교 2학년 여름무렵엔 몸무게가 40-41킬로였다. 엄마가 쬐금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너 팔뚝이 그게 뭐냐. 밥도 못해먹게 생겼다’ 라고 하시면서도 날씬한 내가 이쁘게 차려입은 걸 보실때는 흐뭇해 하시는 듯했다. 그 무렵, 약간의 빈혈 증상이 생긴 것 같았다. 가끔 띵하고 어지러울 때도 있었는데, 뭐 잠깐 이러다 말겠지 하고 넘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체중계가 39kg를 가르켰다. 우와..이런 몸무게도 가능하다니.. 그 이후론 41kg만 되어도 살쪘다는 생각에 먹기를 자제하기 시작했다.

2학년 가을인가 겨울인가부터 생리를 거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난 무척 규칙적이었는데, 한 몇 달 동안 생리가 없는 것이다. 그 때 처음으로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안 먹어서 그러나?

3학년이 되어서도 나의 식단엔 별 변화가 없었다. 아침은 미숫가루, 점심은 대충 요플레나 도너츠 같은 걸로 때우고, 저녁도 그런식 아니면 과일 아니면 아예 안먹기. 그런데 나도 인간인 이상 이렇게 매일 먹을 수만은 없었다. 변비에도 도움이 될겸, 내가 좋아하는 땅콩을 가끔 왕창, 정말로 엄청난 양의 땅콩을 가다가 먹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먹고 나서도 변이 안 나오면 무지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둘코락스라는 변비약을 먹어봤다. 변비약 먹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효과는 참 좋다. 하지만 변비약을 매일 복용하면 의존성이 생겨 약없이는 변을 보기 힘들어진다는 말을 듣고, 많이 먹은 날만 약을 먹었다.

그렇게 가끔 폭식을 하고 약을 먹어 배설하고, 그러면서 평소엔 쥐만큼 먹고 하는 생활이 3학년 봄까지 계속 됐다. 그 봄에 소개팅으로 만난 오빠와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를 만나는건 좋았으나 같이 밥먹으러 가는 건 고역이었다. 평소에 그토록 안 먹던 나였으니.. 그는 저녁때 나를 만나면 당연히 같이 밥을 먹으러 가려니 생각했지만, 나는 그에게 종종 ‘난 이미 뭐 먹었는데.. 별로 배 안고파.’라고 거짓말을 했다. 친구들을 만나도 먹는 척만 했지 접시에 담긴 것을 반 이상 먹은적이 없었다. 밥 때라고 밥 챙겨먹는 사람들이 무식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남자친구의 영향이었는지, 아니면 너무 안 먹어서 기운이 없고 생리도 거르고 하는 내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지 조금씩 밥을 먹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3학년 겨울때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말에 집에 있을 땐 밥을 챙겨먹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평소엔 새모이처럼 먹다가 간혹 양념통닭 한마리를 앉은 자리에거 다 먹는다든지 하는 폭식을 하고, 그리고 나선 먹은 걸 빼내야지 하는 생각으로 변비약을 먹고 하는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내가 그런 식습관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먹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래선 안되겠다라고 절실히 느꼈고 결정적으로 식습관을 바꾸게 된 계기는 한 달간의 신입사원 연수였다. 연수소에서 한 달 정도 합숙을 하면서 합숙소 밥을 삼시세끼 먹는 생활을 한 달하고 나니 몸무게는 43-44kg가 되었지만 체력이 붙어서 좋았고, 그 뒤론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내가 보기엔 호리호리한 몸매인 많은 여자분들이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고 이런 나의 옛날 얘기를 끄집어내고 싶어졌다. 먹는 것을 극도로 억제하는 다이어트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당신의 몸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불러 일으킨다. 안 먹어서 몸무게를 빼는 것은 어찌보면 가장 쉽지만, 가장 위험한 방법이다. 10-20대의 젊은 나이엔 이 방법으로 효과를 많이 보지만, 나이가 들면 체력이 떨어지게 되어 먹지 않으면 비실비실 해질수밖에 없다.

난 먹는 것을 극도로 혐오할 정도의 상태에서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운동의 힘을 빌었다. 운동에 대해서는 따로 다시 써보려고 한다.

제발이지 안먹고 살빼는 짓은 하지 마시라고 신신당부하고 싶다.

Discussion

13 Responses to “다이어트와 거식증”

  1. 에휴~
    뭐든 올바르지 않은 꼼수로 어떻게 해보려고 하면 뒤탈이 있죠.

    Posted by 솔직남 | 12. Nov, 2009, 5:58 am
  2. 159에 45면 마르신 체형인데…. 부러우시네요…
    저도 살좀빼려고 운동중 ^^;

    Posted by 눈꽃 | 12. Nov, 2009, 11:42 am
  3. 살이 한번 찌기 시작하니 기하급수적으로 찌더라고요.
    또 빠지기 시작하면 엄청 빠지는데, 이게 아무래도 일과 연관이 있는 것 같더군요.
    일이 바빠지면 살이 빠지고, 한가해지면 찌기 시작하는데, 요즘은 나잇살로 찌는 것 같아요. ㅎㅎ

    Posted by 하늘엔별 | 12. Nov, 2009, 9:59 pm
    • 나잇살..무섭죠. 나이들면 살도 잘 안빠져요. 찌기 전에 예방하는게 최고입니다.

      전 일이 바쁘면 찌고 한가하면 빠지는 스타일인데.. 한가하면 많이 돌아다니고 운동도 더 많이하게 돼서 그런거 같아요. 일할때는 이상하게 더 배가 고프구요..ㅎㅎ

      Posted by 솔직녀 | 13. Nov, 2009, 12:17 am
  4. 저는 윗분들과 상반되는 고민을 하고 있죠.
    즉 살이 잘 안찐답니다.
    이게 죽을 맛이죠.
    마른 체형은 옷입은 테도 잘 안나고, 사람들이 약하게 보는 문제가 있죠.
    찐 살은 운동으로 뺄 수 있지만요,
    없는 살은 운동으론 불가능하답니다.ㅎㅎㅎ
    문제는 제가 먹는 데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이죠.
    운동은 좋아하는데.
    쩝…

    Posted by 크눌프 | 15. Nov, 2009, 10:34 pm
    • 크눌프: 먹는데 관심이 없는 분들은 절대 안 찌더군요. 전 먹는걸 너무 좋아해서리…
      살찌는 것을 골라 드세요. 제 남친도 크눌프님 같은 체질인거 같아요. 근데 5-6년간 근육운동 열심히 하고 하루에 밥을 5끼씩 먹고 해서는 보기 좋은 상태죠. 보니까 살찌우려고 할 때는 땅콩 버터를 하루에 몇 숫갈씩 퍼먹더라구요.

      Roadcat: 근데 나이가 드니 몸무게는 그대로지만 살이 붙어야 할 곳은 빠지고 붙지 말아야할 곳에만 붙더군요. 흑…
      그래서 요샌 엉덩이 운동량을 늘렸답니다. ㅎㅎㅎ

      Posted by 솔직녀 | 16. Nov, 2009, 9:38 am
  5. 159cm에 45kg 정도면 BMI 기준으로도 마른 체형에 들어가시는 거 맞아요.

    자기 관리가 철저하신 것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ㅁ+)b

    Posted by Roadcat | 16. Nov, 2009, 8:36 am
  6. 저도 비슷해요.. 저정도로 내려갔던적은 없지만 몸무게가…
    저도 800먹고 운동하고.. 한달 정도… 그리고 무월경 오구요.. 그래서 폭식하고… 그래도 평소에는 적게먹고… 1년 지나고서야 겨우 보통 사람처럼 먹고 외식을 두려워하지 않는거 같아요 ㅠ_ㅠ 지금도 좀 무섭긴 하지만 가끔은 괜찮아요.. 월경은 돌아오셨나요?

    Posted by | 09. Dec, 2009, 6:50 am
    • @헐: 지금은 완전 정상인이죠. 생리도 정상이구요. ㅎㅎ
      요즘은 적어도 하루에 밥 두끼는 제대로 먹구요, 많이 먹었다 싶은 날은 다음날 꼭 운동을 합니다.
      먹고 싶은거 못 먹고 살면 무슨 낙이 있겠어요.. ㅎㅎ

      Posted by 솔직녀 | 09. Dec, 2009, 9:37 am
  7. 아,이렇게 와닿는 글은 정말이지 처음이네요..

    저와 비슷하신 분이 있다는게… 놀랍구요

    저는 12kg를 왔다갔다 2번 찍고나니까 탈모에 몇달째 생리도 끊겨버렸습니다

    병원에서 호르몬주사에 약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효과는 못보고있습니다

    저는 요즘 다시 돌아오는 폭식증상으로 걱정도 되고 하지만

    예전보다야 많이 먹고 식탐이 조금씩은 줄고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도 사람이 간사하게 정상체중 범위안에 들어와 버리니 무섭고 다시 빼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제가 방송연예과에 재학중이라서 그런지 주위에 온통 낙엽같이 마른애들뿐이거든요

    고등학교때부터 공부해오던 전공분야를 계속 하려면 날씬한게 유리한게 사실이고

    얼마전 미팅때만난 감독님은 키와 몸무게 부터 물으시더라구요

    저같은 경우는 직업관계상 포기할 수는 없는 부분이니..

    좀더 건강하게 소식하면서 빼야하고 유지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폭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아주 수없이 경험했거든요

    집에 혼자 남겨지면 편의점에서 몇만원어치 과자와 빵을 사고

    집에 와서 다 먹고 밥을 먹고 그걸 보고 식구들이 기절할까봐 몰래

    밖에 쓰레기통에 버리고.. 제 스스로가 역겨워질 무렵

    이글을 읽고 다시 생각하게되었습니다..

    건강하게 소식하면서 마음의 병을 고쳐야겠다구요..

    무튼 정말 힘이되는 글이었습니다

    Posted by just do it | 11. Feb, 2010, 12:11 am
    • 건강이 제일 중요하죠. 평소에 꾸준히 운동하고, 단백질과 채소, 과일 등 몸에 좋은 음식으로 적당히 먹는 식습관을 유지한다면 몸매 유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봐요. 방송연예계 일이 몸이 날씬하긴 해야겠지만 체력도 있어야 되잖아요.
      과자나 단게 먹고 싶어지는건 평소에 너무 그런 음식을 억제하기 때문일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먹고 싶은 걸 먹도록 하세요. 그리고 열심히 운동하면 되죠. 너무 참으면 뭐든 병이 되더라구요.
      부디 건강조심하시면서 몸매 유지하세요~~

      Posted by 솔직녀 | 11. Feb, 2010, 8:3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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