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에게 한국말을 조금씩 가르치기 시작한지 몇 달째다. 어릴 때 태권도를 배우면서 하나, 둘, 셋, 넷 하고 기합넣는 것을 한국말로 배웠고, 인사말 정도는 한국말로 할 수 있는 정도이지만, 한국어의 기본도 전혀 모르고 가나다도 모르는 상태라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그냥 생각나는대로 상황에 맞는 표현을 하나씩 가르치기로 했다.
가장 먼저 가르치게 된 단어들은 신체부위.
자기 전에 둘이 누워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그가 물었다. ‘eye가 한국어로 뭐야?’ 그런식으로 시작해서 눈, 코, 입, 이마, 뺨, 얼굴 각 부위를 마스터하고는 신체부위로 넘어갔다. 팔, 다리, 손, 발, 가슴, 배.. 그리곤 자연스럽게 생식기.
penis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뭐라고 해야할까 사실 고민이었다. ‘성기’나 ‘음경’은 너무 의학적이어서 나도 잘 안쓰는 단어들인데.. 그래서 ‘고추’를 가르쳐줬다. ‘고추는 또 다른 뜻이 있는데 먹는 pepper도 고추야’ 했더니 바로 기억을 하더라. 역시 시각적 연상 효과가 중요하다. 고추를 배우고 나선 당연히 나올 질문을 했다. ‘그럼 pussy는?’ pussy는 영어 속어로 여성 성기를 가르치는 말인데, vagina에 비해 훨씬 일상적인 단어다. 어쨋거나 여성 성기의 우리말을 생각해내려니 의학용어 외엔 떠오르는 단어가 ‘보지’밖에 없는거다. 나의 한국어 단어 실력의 한계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고추와 보지는 그 뒤로 남자친구 한국어 공부의 기본 단어가 되었다. 내가 새로운 동사나 형용사를 가르쳐 줄 때마다 고추와 보지를 써서 응용하는 능력엔 나도 감탄했다.
응용사례 1)
그: I’m hungry가 한국말로 뭐야?
나: 배고파. 배는 stomach이야.
그: … 고추고파..
나: …
응용사례 2)
나: I want to eat 은 ‘먹고 싶어’야.
그: 먹고 싶어..
나: 응.
그: 보지 먹고 싶어..
나: (퍽)
응용사례 3)
나: hair는 머리, hair 하나하나는 머리카락
그: 응
나: hand는 손, finger 하나하나는 손가락
그: 응
나: foot은 발, toe 하나하나는 발가락
그: 응
나: 공통점을 알겠어? ‘가락’은 보통 하나하나를 따로 말할때 쓰는 말이야. 무슨무슨 가락 이렇게.
그: 음.. 그럼 너 가슴 한 쪽은 가슴가락?
나: 그건 아니구, 가락은 보통 가느다랗고 길쭉한 모양인거에만 쓰이는거 같다.
그: 그럼.. i have 고추가락.
나: …
한마디 한마디 가르칠 때마다 나를 웃겨주어서 나도 가르칠 맛이 난다. 요즘엔 존대말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만나서 반갑습니다’를 한참 동안 못 외워서 고생이었다. ‘반나서 만갑습니다’, 혹은 ‘만가서 반납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헷갈려 하더니 이제 좀 익숙해진듯 처음 만나는 내 한국인 친구들에게는 ‘만나서 반갑습니다’를 곧잘 써먹고 있다.
나: ‘만나서 반갑습니다’ 보다 훨씬 더 예절바른 존대말을 가르쳐 줄까?
그: 뭔데?
나: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그: @@ …. 됐네…
November 30, 2009 at 9:38 pm
ㅋㅋㅋ..울신랑도 가장 처음으로 배운 단어가 “방구”였어요..
December 1, 2009 at 12:07 am
하하.. 전 아직 ‘방구’는 안 가르쳐줬네요, 그러고보니.
요샌 로제타 스톤으로 한국어 공부하고 있지요.
November 15, 2009 at 11:23 pm
간만에 왔는데 역시 언니에요! 아 정말 저는 솔로부대 최고위 여자라죠..
제 친구도 마찬가지. 가끔 우리끼리 그런 농담을 해요, 거미줄 쳤다고.
November 16, 2009 at 9:39 am
남졍: 오랫만이네요~~ 재밌는 솔로부대의 얘깃거리 있으면 나눠주세요.
November 6, 2009 at 8:10 pm
역시 외국어는 야한 것과 욕 등을 통해 배우는 것이 빠른 것 같네요.
한국 길거리에서 ‘fuck you’나 ‘shit’하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답니다.
어디 가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도 빨리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데…
November 2, 2009 at 11:18 pm
ㅎㅎㅎ 전 욕은 가르쳐주지 않고 있습니다. 안 가르쳐줘도 그런건 알아서 책보구 배우더라구요.
질문에 대한 답은 새 글로 올렸습니다.
November 2, 2009 at 4:19 pm
ㅋㅋㅋㅋ 아… 제 남자친구랑 비슷하네요
다만 야한쪽보단 욕쪽으로 더 잘배우는것 같다는…
엽기적인 그녀를 보고나서 계속
“죽을래? 커피마셔 ” 를 달고살더라구요
아 질문입니다.
솔찍히 많은사람들에게 물어보고싶은데 딱히 물어볼곳도 없어요 ㅋㅋ
-섹스할때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October 28, 2009 at 7:37 pm
아마… 비유적으로 ‘조개’ 라고 하던가요…
홍합을 보시면 알 수 있으실듯.
October 29, 2009 at 9:36 am
흠.. 그렇군요. 예전에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에서 그것을 꼬막에 비유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October 28, 2009 at 9:46 am
으하하 가슴가락;;
한 번 웃고갑니다 ^^
October 28, 2009 at 12:59 am
블로그 우연히 발견한 이후 종종 잘 보고 있어요. 제 남친이랑 똑같아서 첨으로 리플 남겨요. ㅎㅎ 우리도 신체부위 (눈코입…)부터 시작했는데 “엄마 눈은 어디있나 요기, 엄마 코는 어디있나 요기” “머리어깨무릎발” 등의 동요나 “코코코코코코 입!” 같은 아기들 게임도 종종 이용했죠. 저도 생식기에 해당하는 단어 가르치기가 어려웠어요. 또 의외로 어려웠던 거는 “I want to kiss you”를 한국어로 뭐라고 하냐는 거였는데 “뽀뽀”라는 단어는 유아어라서 귀여운 느낌만 있지 kiss가 갖는 로맨틱하거나 섹시한 느낌이 없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도 보통 ‘키스’라고 한다고 하니까 놀라더군요. kiss에 해당하는 한국말이 없냐면서. “입맞추다”라는 동사가 있긴 한데 시적인 표현에서나 쓴다고 하니까 자기는 시적인 거 좋아한다면서 기어이 “너에게 입맞추고 싶어”라는 문어체 문장을 배워 곧잘 써먹습니다. ^^
October 28, 2009 at 10:31 am
Renard: 저도 키스가 한국말로 뭐냐는 질문에 그냥 ‘키스야’라고 했죠. 우리나라 사람들 보통 ‘입맞추다’란 표현을 잘 안쓰잖아요. 제 남친은 뽀뽀란 말을 굉장히 좋아해요. 영어엔 그렇게 귀여운 느낌을 주는 표현이 없다면서.. ‘뽀뽀’는 딱 그 느낌이 온대요. 길 가다가도 가끔 ‘뽀뽀’ 이러면서 입술을 내밀곤 해요. ㅎㅎ
한국말 가르치면서 문화적 차이도 많이 느끼는데 그런 점에 대해서도 한 번 써보구 싶어요.
상추캔디: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